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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삭, 김병호, 김재민이, 박민성, 송주원, 인동욱, 정지연, 홍은주 김형재, 노경, 이다영, 박성진, 홍성태 지음
원주문화재단 발행, 150x210밀리미터, 264쪽
<할 수 있을 때까지, 원인동 —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원주문화재단 등이 주관한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이라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간되었다. 원주의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작은 마을인 원인동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작가들과 사진가 노경이 제공한 풍부한 프로젝트 진행 과정과 그 결과들, 지역을 꼼꼼하고 주의깊게 기록한 사진 기록과 함께 마을미술로 대표되는 공공미술,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참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간 글로 구성되어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원인동' vs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
책의 제목인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예술감독인 정이삭과 프로젝트 참여자 송주원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나눈 대화로부터 나왔다. 건축과 무용이라는, 상이한 분야에 속한 두 사람은 지난 10여 년 간 지속적으로 사회적, 공공적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정이삭은 2019년 원주시의 공공건축가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DMZ, 철원, 연평도, 동두천 등의 지역에서 건축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공공적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안무가이자 감독인 송주원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도시공간 무용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담는 <풍정.각(風情.刻)> 시리즈를 펼쳐왔다.) 이들이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과 실행 과정, 나아가 공공예술, 개발과 도시공간의 경험에 대해 나눈 대화는 신실하고 솔직하며 많은 부분 긍정적인 진정성을 담고 있지만, 사회적, 공공적 성격을 띤 해당 장르와 분야에서 그간의 성취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이들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어디까지나 회의적이며 현실을 의심하거나 견뎌내고 있으며 여전히 지속적으로 벽에 부딛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화는 송주원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맞아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하지만 죽어도 못 하겠으면 그만 해야죠."
마을미술, 공공미술, 도시재생
원주는 교통의 요지로 강원도 내의 최대 규모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전후 군사 도시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에는 교육 도시로 자리잡기도 했다. 현재도 혁신도시로 선정된 이후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방 도시이기도 하다.
원인동은 군사 도시로서의 성격이 약화되며 역 이전과 함께 완전히 쇠락한 원주역을 비롯한 구도심의 일부로 노후한 주택들로 이루어진 주거 지역이다. 구도심, 원도심이라고 불리우는 전국의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낙후된 도시 인프라, 사회적 서비스의 접근성, 유동인구의 급격한 변화, 거주 계층의 동시적 하강에 따른 슬럼화 등의 문제를 공유한다. 원주시와 구도심 등을 키워드로 검색하다보면 최근 수 년 간 이 구도심 구역에 집중적으로 마을미술, 도시재생,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이곳만의 상황도 아니다.
애초 이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이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할 수 있을 때까지'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성격과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진과 참여자들의 태도와 관점이 한 가지로 합치되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복합적인, 서로 상충하는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여타 공공미술, 마을미술, 도시재생 프로젝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자들의 면면이 완전히 특별한 것도 아니며, 지자체나 공공기관, 국가가 주도하는 공공 프로젝트들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온 이들이다. 이들은 마을미술, 공공미술, 도시재생이 당대 공공성에 대한 질문과 실천이 이루어지는 실험의 장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을 운영하는 체제의 정치적인 도구로서 고착화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 한편으로 이 책이 지속적인 시도와 실패의 기록으로서 작동하기를 원했다.
본문의 마지막은 책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노경의 원인동을 조망하는 사진들로 구성된다. 약 반년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노경은 지속적으로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프로젝트에 의해 설치된 것들이 눈에 띄는 한편, 사진은 과연 이 프로젝트로 인해 진정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고 있는 듯 하다.
책 속에서
도시의 크고 작은 형상은 그 이면의 수많은 이야기들의 축적으로 발현된다.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지층을 헤아리는 것이다. (…) 한 도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편견 없는 능력이 필요하다. (…) 원인동 마을미술 사업의 초기 목표는 이 원인동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을 인정하는 것이며,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탐구하며, 진흙 밭을 뒹구는 지난한 체감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정은 동정이 아니고, 과정은 무책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않아야 한다. 논의 및 창작된 어떤 것이 주민과 유관자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서문 중, 정이삭
공동체는 내적으로는 평등해도 외적으로는 배타적이어서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면에서 보자면, 공동체가 개방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시민적 공동체로 발전하는 게 중요해요. (…) 우선 그
주체들부터 각성해야죠.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좋은 게 되어야 한다는 각성. 그런 시민적 자각, 시민적 각성이 필요해요. 공동체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도 만들고, 시민단체에도 적극적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는 거죠. (…) 어쨌든 원주의 공동체 운동은 원주가 가진 굉장히 소중한 자원이에요. 이것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활성화되어야 하겠지만, 공동체의 내적 평등성과 민주성을 사회적으로 더 키워서 사회적 시민성을 확대하는 것, 시민단체와 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 것, 이런 과제를 더 적극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어요.(…)
— 홍성태 & 정이삭 대담 중, 홍성태
일상이 유지되는 것, 내가 일상을 살아내는 것,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 우리가 어떻게 같이 나눌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어요. 평상은 원래 마을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큰 수박을 쫙쫙 크게 잘라 놓고 츄르륵 함께 나눠 먹는 거잖아요. 퍼포먼스 마지막 장면에는 관객들과 다 같이 수박을 나눠먹었었던 재미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정이삭 건축가의 평상 작업이 저한테는 더 매력적이었죠. 평상이라는 것을 마을 길목에 올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로 시작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 마주하고 관계가 생기는 것, 만날 수 있게 만드는 자리.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의 방식으로 하고 맘껏 해도 되는 자리요. (…) 예술이라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너무 중요한 부분이죠. 예술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거고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체험하는 미적 가치도 일상에서 너무 중요하잖아요. (…)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제 몸이 닿는 마을의 골목이고 울퉁불퉁 어려운데 걷고 싶은 시간의 감각이거든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건 하늘보고 구름 보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 송주원 & 정이삭 & 김형재 대담 중, 송주원
서울은 자가발전하는 식으로 계속 집중화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방의 원도심이 살아남는 방법은 딱히 없으니까요. 사는 사람들이나 공간이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할 수 없으니까 도시재생이라는 명목으로 수명 연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 공간들을 빠른 속도로 삭제하고 있는데 삭제하기는 쉬운데 복구하거나 다시 만들기는 쉽지 않죠. 아파트는 20여 년만 지나도 재건축 판정을 받아서 밀어버리고 다시 지을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그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아야 되는지 생각은 하는 것인가, 시간의 체적이라는 경험을 제공해줄 수 없는 도시가 되었을 때 서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서울은 500년 + 100년 된 도시인데 그것들을 다 지워버린 다음 사람들은 이제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되는 거지 싶은 거죠.
— 송주원 & 정이삭 & 김형재 대담 중, 김형재
저는 고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친다. 고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게 기본적인 제 생각이에요. 그대로 둬도 안 되고 갑자기 확 변해도 안 되고 고치면서 살면 된다, 고치면서 사는 것에 가장 기본적인 기술을 선보인 그런 태도죠. (…)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상적이고 너무 평범한 거라서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죠. 예를 들면 원인동에 있는 평상은 원인동 사람들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조금 다르게 만들어 주고 싶은 거죠. (…) 개선하는 거. 계속 조금씩 고치는 거. 진화하는 거. 저는 진화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진보도 아니고 아주 조금씩 개선해서 진화되면 좋겠어요. 실제 그렇게 되는 도시들이 있죠. 그런 도시들은 변화되지 않았다는데 아마 조금 변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서서히 진화돼서 이전의 가치가 유지되고 그대로라는 느껴지는 거죠. (…)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계속 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건, 지금 우리가 하는 이런 고민들을 가능한 남겨서 다음 사람은 고민을 덜 하길 바랐어요. 이번에 원인동에서 한 것이 100%가 안될테니 그 과정을 잘 기록해놓으면 누군가가 나중에 참고를 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또 똑같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또 이 책을 쓸 수는 없으니까 우리의 기록이 어떤 시행착오의 기록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계속 쌓다 보면 다음번에는 이것보다 진보된 생각으로 누군가가 기록을 남길 수도 있고요. 다음번의 생각은 좀 더 나아질 테니까 그렇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송주원 & 정이삭 & 김형재 대담 중, 정이삭
* 소량 배포하니 온오프라인에서 책을 구매하시는 분들 가운데 책이 필요하신 분은 따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이삭, 김병호, 김재민이, 박민성, 송주원, 인동욱, 정지연, 홍은주 김형재, 노경, 이다영, 박성진, 홍성태 지음
원주문화재단 발행, 150x210밀리미터, 264쪽
<할 수 있을 때까지, 원인동 —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원주문화재단 등이 주관한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이라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간되었다. 원주의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작은 마을인 원인동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작가들과 사진가 노경이 제공한 풍부한 프로젝트 진행 과정과 그 결과들, 지역을 꼼꼼하고 주의깊게 기록한 사진 기록과 함께 마을미술로 대표되는 공공미술,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참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간 글로 구성되어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원인동' vs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
책의 제목인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예술감독인 정이삭과 프로젝트 참여자 송주원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나눈 대화로부터 나왔다. 건축과 무용이라는, 상이한 분야에 속한 두 사람은 지난 10여 년 간 지속적으로 사회적, 공공적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정이삭은 2019년 원주시의 공공건축가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DMZ, 철원, 연평도, 동두천 등의 지역에서 건축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공공적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안무가이자 감독인 송주원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도시공간 무용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담는 <풍정.각(風情.刻)> 시리즈를 펼쳐왔다.) 이들이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과 실행 과정, 나아가 공공예술, 개발과 도시공간의 경험에 대해 나눈 대화는 신실하고 솔직하며 많은 부분 긍정적인 진정성을 담고 있지만, 사회적, 공공적 성격을 띤 해당 장르와 분야에서 그간의 성취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이들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어디까지나 회의적이며 현실을 의심하거나 견뎌내고 있으며 여전히 지속적으로 벽에 부딛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화는 송주원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맞아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하지만 죽어도 못 하겠으면 그만 해야죠."
마을미술, 공공미술, 도시재생
원주는 교통의 요지로 강원도 내의 최대 규모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전후 군사 도시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에는 교육 도시로 자리잡기도 했다. 현재도 혁신도시로 선정된 이후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방 도시이기도 하다.
원인동은 군사 도시로서의 성격이 약화되며 역 이전과 함께 완전히 쇠락한 원주역을 비롯한 구도심의 일부로 노후한 주택들로 이루어진 주거 지역이다. 구도심, 원도심이라고 불리우는 전국의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낙후된 도시 인프라, 사회적 서비스의 접근성, 유동인구의 급격한 변화, 거주 계층의 동시적 하강에 따른 슬럼화 등의 문제를 공유한다. 원주시와 구도심 등을 키워드로 검색하다보면 최근 수 년 간 이 구도심 구역에 집중적으로 마을미술, 도시재생,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이곳만의 상황도 아니다.
애초 이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원인동 문화촌의 탄생'이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할 수 있을 때까지'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성격과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진과 참여자들의 태도와 관점이 한 가지로 합치되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복합적인, 서로 상충하는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여타 공공미술, 마을미술, 도시재생 프로젝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자들의 면면이 완전히 특별한 것도 아니며, 지자체나 공공기관, 국가가 주도하는 공공 프로젝트들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온 이들이다. 이들은 마을미술, 공공미술, 도시재생이 당대 공공성에 대한 질문과 실천이 이루어지는 실험의 장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을 운영하는 체제의 정치적인 도구로서 고착화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 한편으로 이 책이 지속적인 시도와 실패의 기록으로서 작동하기를 원했다.
본문의 마지막은 책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노경의 원인동을 조망하는 사진들로 구성된다. 약 반년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노경은 지속적으로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프로젝트에 의해 설치된 것들이 눈에 띄는 한편, 사진은 과연 이 프로젝트로 인해 진정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고 있는 듯 하다.
책 속에서
도시의 크고 작은 형상은 그 이면의 수많은 이야기들의 축적으로 발현된다.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지층을 헤아리는 것이다. (…) 한 도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편견 없는 능력이 필요하다. (…) 원인동 마을미술 사업의 초기 목표는 이 원인동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을 인정하는 것이며,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탐구하며, 진흙 밭을 뒹구는 지난한 체감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정은 동정이 아니고, 과정은 무책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않아야 한다. 논의 및 창작된 어떤 것이 주민과 유관자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서문 중, 정이삭
공동체는 내적으로는 평등해도 외적으로는 배타적이어서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면에서 보자면, 공동체가 개방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시민적 공동체로 발전하는 게 중요해요. (…) 우선 그
주체들부터 각성해야죠.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좋은 게 되어야 한다는 각성. 그런 시민적 자각, 시민적 각성이 필요해요. 공동체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도 만들고, 시민단체에도 적극적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는 거죠. (…) 어쨌든 원주의 공동체 운동은 원주가 가진 굉장히 소중한 자원이에요. 이것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활성화되어야 하겠지만, 공동체의 내적 평등성과 민주성을 사회적으로 더 키워서 사회적 시민성을 확대하는 것, 시민단체와 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 것, 이런 과제를 더 적극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어요.(…)
— 홍성태 & 정이삭 대담 중, 홍성태
일상이 유지되는 것, 내가 일상을 살아내는 것,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 우리가 어떻게 같이 나눌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어요. 평상은 원래 마을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큰 수박을 쫙쫙 크게 잘라 놓고 츄르륵 함께 나눠 먹는 거잖아요. 퍼포먼스 마지막 장면에는 관객들과 다 같이 수박을 나눠먹었었던 재미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정이삭 건축가의 평상 작업이 저한테는 더 매력적이었죠. 평상이라는 것을 마을 길목에 올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로 시작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 마주하고 관계가 생기는 것, 만날 수 있게 만드는 자리.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의 방식으로 하고 맘껏 해도 되는 자리요. (…) 예술이라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너무 중요한 부분이죠. 예술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거고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체험하는 미적 가치도 일상에서 너무 중요하잖아요. (…)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제 몸이 닿는 마을의 골목이고 울퉁불퉁 어려운데 걷고 싶은 시간의 감각이거든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건 하늘보고 구름 보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 송주원 & 정이삭 & 김형재 대담 중, 송주원
서울은 자가발전하는 식으로 계속 집중화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방의 원도심이 살아남는 방법은 딱히 없으니까요. 사는 사람들이나 공간이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할 수 없으니까 도시재생이라는 명목으로 수명 연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 공간들을 빠른 속도로 삭제하고 있는데 삭제하기는 쉬운데 복구하거나 다시 만들기는 쉽지 않죠. 아파트는 20여 년만 지나도 재건축 판정을 받아서 밀어버리고 다시 지을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그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아야 되는지 생각은 하는 것인가, 시간의 체적이라는 경험을 제공해줄 수 없는 도시가 되었을 때 서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서울은 500년 + 100년 된 도시인데 그것들을 다 지워버린 다음 사람들은 이제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되는 거지 싶은 거죠.
— 송주원 & 정이삭 & 김형재 대담 중, 김형재
저는 고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친다. 고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게 기본적인 제 생각이에요. 그대로 둬도 안 되고 갑자기 확 변해도 안 되고 고치면서 살면 된다, 고치면서 사는 것에 가장 기본적인 기술을 선보인 그런 태도죠. (…)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상적이고 너무 평범한 거라서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죠. 예를 들면 원인동에 있는 평상은 원인동 사람들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조금 다르게 만들어 주고 싶은 거죠. (…) 개선하는 거. 계속 조금씩 고치는 거. 진화하는 거. 저는 진화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진보도 아니고 아주 조금씩 개선해서 진화되면 좋겠어요. 실제 그렇게 되는 도시들이 있죠. 그런 도시들은 변화되지 않았다는데 아마 조금 변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서서히 진화돼서 이전의 가치가 유지되고 그대로라는 느껴지는 거죠. (…)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계속 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건, 지금 우리가 하는 이런 고민들을 가능한 남겨서 다음 사람은 고민을 덜 하길 바랐어요. 이번에 원인동에서 한 것이 100%가 안될테니 그 과정을 잘 기록해놓으면 누군가가 나중에 참고를 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또 똑같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또 이 책을 쓸 수는 없으니까 우리의 기록이 어떤 시행착오의 기록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계속 쌓다 보면 다음번에는 이것보다 진보된 생각으로 누군가가 기록을 남길 수도 있고요. 다음번의 생각은 좀 더 나아질 테니까 그렇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송주원 & 정이삭 & 김형재 대담 중, 정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