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M. G. Mfg.]장영혜 중공업 귀중(Dear Mssrs. 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

https://products.minguhongmfg.com/dear-messrs-young-hae-chang-heavy-industries


그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내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에게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지 5년여만이었다. 답장을 받지 못한 편지를 다시 보내는 일만큼 미련하고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데 개인적인 감정을 동원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과 회사를 철저히 분리해 회사 차원에서 계획한 일은 계획한 바대로 실천해야 하고, 달성하지 못한 일은 다시 도전해야 하는 법이다. 폐업 신고서를 작성하기 전까지. 즉, 문제는 시점이다.

2015년 그는 느닷없이 회사를 소개하면서 회사를 설립하고, 거의 동시에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를 마련했다. 회사로서 최소한의 구색을 갖췄으니 남은 일은 존경하는 인물을 비상임 사외 이사로 모시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2004년에 방문한 로댕 갤러리 로비를 떠올렸다.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지옥의 문」(La Porte de l'Enfer) 옆에는 지펠 ‘인터넷’ 냉장고 아홉 대가 세 열로 쌓여 있었고, 냉장실 패널에 탑재된 모니터는 특정 대상을 향한 사랑과 집념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그 모습은 그에게 사랑하는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외에도 웹으로 제법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을 일깨웠다. 그들은 여러모로 회사의 비상임 사외 이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들의 의사는 나중 문제였다.

200자 원고지 스무 장 분량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존경하는 장영혜 중공업의 최고경영자 장영혜, 지식 총괄 책임자 마크 보주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났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자 민구홍 드림.” 편지를 보낸 뒤 그는 그들에게 선물할 명함에 직함을 어떻게 표기하는 게 좋을지 한동안 고민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비상임 사외 이사 장영혜 중공업 최고경영자 장영혜? 민구홍 매뉴팩처링 비상임 사외 이사 장영혜 중공업 지식 총괄 책임자 마크 보주?’ 여기에 연락처 등의 정보를 추가하고, 영문까지 병기한다면 명함은 아무래도 옹색해질 가능성이 컸다. 그들 또한 이 점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편지를 보내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명함을 선물하는 순간은 당도하지 않았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편지 자체를 웹사이트로 치환하면서 다소 유난스러운 장치를 몇 가지 마련했다. 요컨대 글자 색과 배경 색은 무작위로 달라지고(즉, 열람할 때마다 어딘가 새롭고), 글자가 드러나고 사라지는 시간은 구절의 길이에 비례한다. 본문에 딸린 부연은 본문의 25퍼센트 크기로 드러나는 한편, 구절의 성격에 따라 재생되는 드럼과 하이햇의 질서는 심심한, 이따금 불온한 배경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는 참고로 말씀드리는 바일 뿐 두 분의 문해력을 의심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힙니다.”

그가 두 번째 편지를 보낸 2020년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해였을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999년부터 애용해온 플래시(Flash)의 개발과 지원이 그해 말 완전히 종료된 까닭이다. 1996년 매크로미디어(Macromedia)에서 처음 공개한 플래시는 20여 년 동안 웹 디자인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게임, 광고 등의 분야에서 널리 이용됐다. 초기 유튜브(YouTube) 영상 기술 또한 플래시로 구동됐고, 카카오(Kakao)에서는 2020년 12월까지 플래시를 기반으로 데스크톱용 지도 서비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일찍이 플래시가 특정 회사에 종속된 기술이고, 컴퓨터 자원을 지나치게 차지할뿐더러 무엇보다 보안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0년 4월 29일 애플(Apple)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급기야 「플래시에 관한 생각」(Thoughts on Flash)에서 자사의 제품에서 플래시의 흔적을 지운 까닭을 밝히며 플래시를 구시대의 유물로 규정했다. “플래시는 여러모로 진작 사라져야 할 기술이었으니까요.” 그 무렵 아니었을까? 그들의 작품은 플래시 파일(SWF)이 아닌 동영상 파일로 비미오(Vimeo)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형식적으로는 그들의 방식을 일부 답습한 편지는 웹을 이루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 즉 HTML(HyperText Markup Lanugage), CSS(Cascading Style Sheets), 그리고 간단한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를 통해 구동된다. 그가 편지의 형식으로 웹사이트를 택한 건 그들이 웹사이트의 코드를 살펴보며 즐거워하는, 또는 코웃음치는 모습을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을 향한 존경과, 나아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그렇게 편지는 웹 브라우저를 종료하기 전까지 반복된다. 적어도 서버가 운영되는 한, 그들에게 답장을 받기 전까지, 또는 폐업 신고서를 작성한 뒤일지라도.

그는 두 번째 편지에 대한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에 답장을 받지 못한다면 음악 때문일까? 그 사이 그들에게 또 다른 편지를 보낸 누군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냥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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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본디 아트선재센터에서 2020년 10월 30일부터 12월 20일까지 열린 『방법으로서의 출판』(Publshing as Method)에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제품으로 추가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일정상의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제품이 대상으로 삼은 최종 사용자에게 도달했다면 이미 제품의 소임은 끝났다.


한 달에 한 번 여러 방식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