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프리크]Text Freak / 텍스트 프리크 #1 ― MAELZEL'S CHESS-PLAYER (1836) by Edgar Allan Poe / 멜젤의 체스기사 - 에드거 앨런 포

Text Freak #1


MAELZEL'S CHESS-PLAYER (1836) 

Edgar Allan Poe

멜젤의 체스기사 ―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부분 번역  

아마 그 어떤 종류의 전시도 멜젤의 체스기사만큼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에서든 그것은 사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강렬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작동방식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 주제에 대해서 결정적이라고 간주할만한 그 어떤 글도 쓰여지지 않았고, 우리는 위대한 통찰력, 그리고 식별가능한 이해력을 갖고 기계장치의 체스기사를 인간 대행인과 연결되지 않은, 결과적으로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이자 순수기계로 거리낌없이 표명하는 기계공학의 귀재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추정한다면 그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가설이 옳다는 가정하에 현대에나 과거의 그 어떤 비슷한 사물도 기계장치의 체스기사와 비교선상에 놓일 수 없을 것이다. ―p.1


기계장치는 게임에서 항상 승리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순수한 기계라면 항상 이길 수 있을것이다. 체스를 두는 기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원리가 있다면, 같은 원리의 연장으로 도전자의 모든 가능한 수에 대항하여 게임에서 승리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p.22


“기계장치는 순수기계인가?” 질문에 대한 멜젤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나는 그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계장치의 명성과 어디에서든 촉발되는 강한 호기심은 다른 어떤 정황보다도 특히 이것이 순수기계라는 일반적 견해에 기인한다. ―p.27


전시기간동안 기계장치의 상판에는 6개의 양초가 놓여져있다. 자연스레 의문이 발생한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빛이 필요할까? 전시공간이 항상 그렇듯 밝은 실내에서 관객이 체스판을 명확히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1개, 혹은 많아도 2개의 양초만으로 충분한데 말이다. (더욱이 이 기계장치를 순수한 기계라고 가정했을때, 그것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빛이 필요하지 않거나, 아니, 사실은 빛이 아예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그리고 가장 확실한 추론은 내부의 인물이 '터키인'의 흉부를 이루는 투명한 물질(아마도 얇은 거즈)을 투시하기 위해서 강한 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34


우리는 기계장치의 체스기사에 대한 이러한 해답에 대해 어떤 합리적 이의도 제기될 수 없다고 믿는다. ―p.38



사건과 책에 대해서

‘멜젤의 체스기사’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전역과 미국, 캐나다 등을 투어한 ‘기계장치의 체스기사'에 대한 에드거 앨런 포의 에세이다. ‘기계장치의 체스기사’는 체스를 두는 자동인형(오토마타)으로 알려져 많은 관심과 의심, 화제를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포는 기계장치가 순수기계(pure machine), 즉 일종의 인공지능이 아니며 인형의 내부에 숨은 사람이 체스를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포의 결론은 옳았지만 그에 다다르는 추리에는 오류가 있었다. 대행인은 인형이 아닌 캐비닛의 내부에 숨어있었고, 지금의 관점으로까지 확장한다면, 체스를 두는 기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같은 원리의 연장으로 그것은 언제나 게임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적어도 기계장치의 패배는 그것이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가 지적하는 불규칙한 ‘인간적인’ 움직임도 이제는 단지 좀 더 복잡한 알고리즘의 결과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의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었던 몇가지 논리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보다는 원리다. 기계장치의 캐비닛을 열면 기계 추, 톱니바퀴 등의 금속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돌아간다. 전시는 이 내부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관객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과학·기술적으로 가능한 어떤 원리로 체스를 두는 인형이 만들어졌다고 납득한다. 또, 체스기사는 중앙 아시아인의 외모를 닮아 ‘터키인(The turk)’으로 불렸다. 18-19세기의 유럽인에게 낯선 인종의 외모는 근거리에서 그것을 면밀히 관찰하길 망설이게하고, 더불어 사고하는 인형의 언캐니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순수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기계장치는 이런 속임수와 대행인이 필요했다. 내부에서 체스를 두었던 대행인에게는 빛이 필요했다. 다만 포의 추리처럼 외부에 강한 조명을 설치한 뒤 내부에서 직물을 투시하며 시야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대행인의 시각을 위한 양초는 기계장치의 내부에 있었으며 '터키인'의 터번을 통해 환기되는 양초의 연기를 가리기 위해 극적인 연출을 가장한 또 다른 연기가 필요했다. 빛이 필요했던 준수한 체스실력을 가진 대행인은 병으로 죽었다. 멜젤은 배에서 투신했고, 기계장치는 박물관에 기증된 뒤 비밀이 밝혀졌으며, 화재사고로 소실됐다. 


발명가의 설계, 기계장치의 체스기사, 그것의 마지막 소유자였던 멜젤, 내부의 대행인, 관객의 선입견,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가 얽힌 상황들과 계속해서 비교되고 정의되는 인간과 인형의 조건속에서 실제로 작동한 것은 기계장치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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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판에 대해서

2019년에 저작권 없는 책으로 소규모 제작된 '멜젤의 체스기사'는 다음과 같이 조판되었다. 


[1] 저작권없는 고정폭1 폰트를 선택한다. 

[2] 조판의 과정에서 인위적인 커닝값을2 설정한다.

[3] 조판된 단락의 공간이 가변폭 폰트로 조판된 것과 가능한한 유사해보이도록 한다. 


위의 과정은 인디자인의 GREP3 기능으로 이루어진다. GREP을 이용해서 모든 'A'다음에 오는 알파벳의 값을 정하고, 모든 'B'다음에 오는 알파벳의 값 또한 정한다. 같은 과정을 소문자 z까지, 그리고 필요한 모든 문장부호에 적용한다. 로마자 알파벳을 기준으로 대문자와 문장부호를 제외한 소문자와 소문자가 이루는 간격의 경우의 수는 총 676가지이다. 그러나 'i'와 'l'의 너비값은 비슷하거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e', 'o'도 그렇다. 즉, {i, l} 와 {e, o}의 커닝값은 동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b, h, p}의 앞에 위치하는 {c, d, e, o}의 커닝값도 동일하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도비 인디자인 cc 2019'에서 설정가능한 GREP의 최대개수는 100개이므로 부족한 커닝값은 문자패널에서 자간값을 수동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조판할 텍스트를 빈도분석하여 가장 잦은 철자의 커닝값을 우선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ff', 'fi' 등 표준합자도 자간값을 낮춘 문자스타일을 적용하는 식으로 구현한다. 핵심은 인디자인으로 구현할 수 있는 선에서, 고정폭 폰트가 갖지 않는 가변폭 폰트의 속성을 재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보이는 그대로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이 착시효과가 일어나는 이유이자, 수학적으로 동일한 ▲와 ●의 높이를 지각은 다르게 인지하는 이유이다. 이 현상을 시지각적 오류라고 하며,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착시가 일어나는 지점을 파악해 교정하는 것을 시각보정이라고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측정되거나 알게되는 사실을 배제하고 인지된 형태만을 포착하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시각보정이 적절히 이루어진) 가변폭 폰트는 '수학적으로'가 아닌 '시지각적으로' 고르고 일관된 무게중심과 폭, 너비 등을 갖기 위해서 어긋난 수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H'의 가로획과 세로획이 균일해 보이기 위해서는 가로획이 더 두꺼워야 한다. 같은 높이의 'A'와 'O'를 그리고 싶다면 'A' 높이의 값이 더 커야 한다. 따라서 폰트가 제작, 조판, 지각되는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오류의 작동이다. 



(심규선, 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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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자 알파벳은 글자에 따라 필요한 폭과 공간의 값이 다르다. 'W'나 'M'은  'I'나 'L'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을 존중하는 폰트를 '가변폭 폰트'라고 부른다. '고정폭 폰트'는 그와 달리 모든 알파벳의 폭이 고정된 폰트를 부르는 말로, 주로 코딩용으로 쓰인다.

2 'VA'에서 두 글자가 필요한 간격의 값은 'VI'와 다르다. 이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부여하는 것이 '커닝값'이다. 가변폭 폰트의 제작은 'V'와 'A', 'V'와 'B' 그리고 'V'와 'C'… 모든 가능한 조합에 각기 다른 커닝값을 부여하는 작업으로 마무리되며, 고정폭 폰트를 제작할때는 이 과정을 생략한다. 

3 GREP은 워드프로세서의 찾기/바꾸기 기능을 개량한 어도비 인디자인의 도구로, 이를 사용해 모든 'e'다음에 오는 '!'의 크기나 간격, 폰트 스타일을 변경하는 등의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 더욱 섬세한 조판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