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M. G. Mfg.]회사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회사에 시계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으므로(The number doesn’t matter on the clock for a company that focuses on introducing itself)

인류는 오래전부터 시각과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해시계를 비롯해 물시계, 불시계 등 여러 시계를 고안해왔다. 당장 자신이 세상을 떠날 순간보다 언제쯤 위장에 음식물을 채워 넣고, 언제 체리 나무가 열매를 맺을지, 화분에 심은 움벨라타 고무나무(Ficus umbellata)가 시들지 않으려면 언제 수분을 공급해야 할지 궁금했던 까닭일까?

2021년 현재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두 종류의 시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는 회사의 방문객이, 다른 하나는 회사의 임직원이 주로 마주한다.


https://products.minguhongmfg.com/min-guhong-mfg-clock


첫 번째 시계는 로비를 비롯해 회사의 각 공간 한쪽에 자리해 숫자 대신 사명(社名)으로 시각을 안내하고, 사명은 일찍이 세 가지 언어권 고객을 고려해 마련된 문자별 표기 지침에 따라 1초마다 바뀐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띄어쓰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쓰기하는 것을 허용한다.”(한글 표기 지침) 지침은 요컨대 다음과 같다.

  • 한글: ‘민구홍 매뉴팩처링’(원칙), ‘민구홍매뉴팩처링’(허용)
  • 로마자: ‘Min Guhong Manufacturing’(원칙), ‘Min Guhong Mfg.’(허용)
  • 가나: ‘ミン·グホン·マニュファクチャリング’(원칙), ‘ミングマ’(허용), ‘ミンマニ’(허용)

오전 1시 23분 45초를 거치는 순간 시계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명 예순아홉 개다. 수학에 조예가 깊은 방문객이라면, 사명이 밤 12시 59분 59초에는 142개, 1초 뒤 오전 1시에는 하나가 되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시계라는 장치의 본디 목적을 따지면, 방문객이 알고픈 시각을 즉각적으로 가늠하기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회사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회사에 썩 어울리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솔직히 감동받았어요. 한 회사가 사명을 정확히 표기하기 위해 만든 지침을 물건으로 제작해 판매한다는 점에서 저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일류인 회사일수록, 그리고 세계적인 회사일수록 세계인들이 공통된 표기와 발음으로 사명을 발음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송승언, 『레인보 셔벗』, 작업실유령, 2019회사에서 의도한 시계의 또 다른 기능 하나는 다소 복잡한 사명을 어떻게 표기하는지 확실히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글 사명에서 ‘매뉴팩처링’을 ‘메뉴팩처링’, ‘매뉴팩쳐링’, ‘마누팩처링’ 등으로 오기한 적이 있는 고객에게는.




참고로, 시계가 놓인 자리에는 본디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가 2010년 10월 5일 런던 화이트큐브(White Cube)에서 처음 공개한 「시계」(The Clock)를 끊임없이 재생하는 모니터가 놓일 예정이었다. 세계 각국의 1만 2,0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시계가 등장하는 장면을 몽타주해(사람들이 술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제임스 맥테이그[James McTeigue]의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서 빅 벤이 폭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한 이 영상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를 갖춘 영화이면서, 영화와 시계 디자인의 역사를 요약한 시청각 자료이자, 제목처럼 어쨌든 시계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생각지 못한 몇 가지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첫 번째 문제는 영상의 러닝타임이 24시간인 탓에 파일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었다. 오늘날 영상에서 시간의 길이는 대개 파일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는 현대 물리학의 명제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비극적이게도 회사에는 그만한 데이터를 저장할 장치가 없었다. (현재 놓인 시계를 구동하는 파일의 크기는 약 143킬로바이트에 불과하다.) 두 번째 문제는 영상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가로세로 약 6.4, 3.7미터 크기의 대형 스크린과 느긋하게 앉아 시계를 ‘감상’할 수 있는 이케아(IKEA) 소파가 필요했고, 게다가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크린 주위를 감쌀 커튼까지 마련해야 했다. 이 또한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에 기생하는 회사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계 하나만으로 로비 한쪽을 할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금이다.(Time is Money.)”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이렇게 말했다. 시계가 제 기능을 초월해 오히려 사용자의 시간을 빼앗는다면, 사용자로 하여금 표시된 시각 자체에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면, 그것을 ‘시계’라 부르는 게 온당할까. 하물며 그런 불온한 시계를 불특정 다수의 방문객이 오가는 로비를 비롯해 각 공간에 놓은 회사는 과연 건실한 회사일까. 결국 「시계」를 시계로 삼지 못한 회사의 속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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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계는 회사의 사무실 한쪽에 자리해 숫자 대신 문장으로, 시각이나 시간 대신 해당 시각에 수행해야 하거나 유념해야 할 일을 지시하거나 안내한다. 시계에서 시각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는 문장의 각도다. 즉, 문장은 초침을 인용해 1초마다 6도씩 기울어지고, 360도를 지나치는 순간 기울어지지 않는다. 회사의 임직원은 회사와 계약한 소정 근로 시간에는 하릴없이 시계 속 문장을 의식할수밖에 없다. 기울어지나 기울어지지 않으며.



https://products.minguhongmfg.com/fixed-work-hours


문장은 누군가를 (또는 회사 자체를) 재촉하듯 1초마다 바뀐다. 소정 근로 시간에는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일이 있다. “이메일을 작성할 시간입니다.” “문서를 편집할 시간입니다.” “커피를 보충할 시간입니다.” “담배를 피울 시간입니다.” 유념해야 할 일 또한 있다. “서울 부동산이 폭등할 시간입니다.” 낮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문장이 바뀌는 시간은 2초로 느려진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를 쓴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말하지 않았던가. “시간은 환상이다. 점심시간은 두 배로 그렇다.(Time is an illusion. Lunchtime doubly so.)” 이 시간만큼은 계약에 따라 누구라도 느긋할 권리가 있고, 느긋함은 오후 1시 정각 전까지는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오후 7시 정각까지 문장은 제 속도로, 그 이후에는 60초, 즉 1분마다 바뀐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시간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검색할 시간입니다.” 이튿날 소정 근로 시간이 당도하기 전까지는.



한편, 시계는 회사를 떠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관람객은 미술관에서 무엇을 수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자 또 다른 질문으로서 2020년 8월 1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하나의 사건: 무빙/이미지』(This Event: Moving/Image, 김해주 기획)에서 소개된 바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회사나 회사의 제품을 전시하는 일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 시민들이 납부한 고귀한 세금으로 운영하는 미술관에 시계를 전시한다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아무리 ‘무빙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포섭하더라도요. 아시다시피 전시장에 시계를 놓는 일은 큐레이터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금기시돼왔습니다. 백화점에 창문이 없는 까닭과 비슷하죠. 미술관이나 갤러리 입장에서 관람객들은 되도록 오랫동안 전시장에 머물러야 하는데, 시계는 존재 자체로 끊임없이 화이트큐브 밖의 현실을, 갈증과 배고픔을, 마감과 택배 상자와 침실을 환기하니까요. 게다가 놀라실지 모르겠지만, 이 시계는 사실 웹 서버에 저장돼 작동하는 웹사이트이기도 합니다. 즉, 주소만 알면 전시장 밖에서도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공공재죠. 심지어 전시장 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도요. 관람객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방문한 미술관에서 자신 앞에 전시된 작품이 이미 자신의 손안에 있었다는 사실에 혼란이나 자괴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미술관뿐 아니라 외부 공간을 방문하기 어려운 오늘날에는 더더욱이요. 선생님께서는 누군가 청와대 웹사이트의 국민 청원 게시판에 게시한 항의문에 해명할 자료를 준비하셔야 할지도 모르고요. 괜찮을까요?” 회사에서는 큐레이터 김해주에게 물었다. 그는 말했다. “그럼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용기 있는 고객을 사랑한다. 그리고 용기는 금세 전염되고 증식하기 마련이다.


© 서울시립미술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용기를 얻었고, 그렇게 시계는 조금 더 넓고 조금 덜 흰 공간에서 제품 대신 작품 사이에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진열됐다. 시계를 주사할 85인치 TV가 설치된 높이는 전시장 출입구를 알리는 초록색 표시판(코팅된 나무 바닥으로부터 약 3미터)과 동일했다. 전시 기간 시계 속 문장은 자리한 일부 변경되거나 추가됐고(“출입구를 확인할 시간입니다.” “정부에서 지정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시간입니다.”), 그 흔적은 전시가 끝나고 시계가 제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고스란히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다. 뒤이은 전시들이 모두 취소된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예정보다 3개월 더 회사를 소개하는 행운을 누렸다. 다행이 큐레이터가 항의문에 해명할 자료를 준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정 근로 시간 외에 전시장을 방문한 회사의 임직원 몇몇이 시계를 보는 순간 짐짓 놀랐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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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놓인 두 시계 모두 CSS(Cascading Style Sheets)와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코드 몇 줄 덕에 용케도 낮과 밤을 감지해 배경색과 글자색을 바꾼다.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여섯 시 전에는 하양 배경에 검정 글자로, 그 외의 시간에는 그 반대로. 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시계에서 가늠해야 할 것이 정확한 시각이나 시간이 아닌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즉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마스크를 착용한 채일지라도 벚꽃이 흐드러진 연남동 경의선숲길을 걸을 수 있는지 정도면 충분한 까닭이다.

한 가지 더, 특정일을 위한 시계가 있다. “오늘이 성탄절인가요?” 이 시계는 문득 궁금증을 품은 이에게 속 시원한 답을 내려주지만, 정작 성탄절 당일에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성탄절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고객을 제외하고. “웹사이트의 형식을 띠는 제품은 오늘이 성탄절인지 파악해 고객에게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고객이 마주하는 문구는 대개 ‘아니오!(No!)’다. 그뿐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지 이것인 동시에 저것인 경우는 없다. 오늘이 성탄절인가, 아닌가. 원고는 완성되는가, 아닌가. 제품은 중국과 베트남에 자리한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가, 아닌가.”(정지돈, 『thisisneverthisisneverthat』, 워크룸 프레스, 2020)


https://products.minguhongmfg.com/is-it-christmas-today


한 달에 한 번 여러 방식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