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자주 하는 질문」에서 밝히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당장 내일 휴거가 일어나더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턴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회사에서는 인턴에게 교육과 실습을 목적으로 중요도가 높지 않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부여하고, 인턴은 회사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회사와 인턴이라는 관계가 작동하는 일반적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관계는 반복되기만 할 뿐 진전하지 않는다. 어느 쪽은 멍에를 질 수밖에 없는 이런 관계에는 위험이 도사리기 마련이다.
본디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숙주에 기생하는 마당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거의 모든 업무는 운영자 스스로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수행하는 데 무리가 있는 업무는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맺은 동업자들, 예컨대 가깝게는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 부탁하기도 한다.) 중요도가 높지 않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아예 처음부터 수행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피할 수 없다면 DRY(Don’t Repeat Yourself) 원칙에 따라 업무에 맞게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담당하는 편이다. 예컨대 10만 행이 넘는 스프레드시트 10만 장을 정리하거나 가로세로 10만 픽셀짜리 이미지 10만 장의 외곽선을 정리하는 데 네 시간이 소요된다면, 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장인 정신은 차라리 한 시간 만에 업무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두 시간, 해당 소프트웨어에 붙일 근사한 제목을 정하는 데 한 시간을 쏟는 것이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버그 탓에 다소 덜컹거릴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업무를 처리하는 한 시간 동안 운영자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앞으로 비슷한 업무가 있다면, 비록 제목이 바뀌겠지만, 기존 소프트웨어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은 무엇을 하는가. 이는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고,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같은 질문과 엇비슷하다. 수행할 업무는 인턴 자신이 스스로 부여하고, 진행 방식과 마감일 또한 자신이 정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업무가 회사에서 수행하기에 적절한지 판단하고, 업무가 무리 없이 진행되는지 중간중간 확인만 할 뿐이다. 업무를 완수하면 인턴은 회사를 떠난다.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회사에 재정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히지 않는 이상 민구홍 매뉴팩처링으로서는 사실 상관이 없다. 실패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인턴 자신의 몫이다. 사업가로서 수없이 실패를 겪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모든 일에서 반드시 성공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는 바가 적지 않다. 따라서 수행할 업무를 스스로 부여할 수 없다면, 즉 주체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인턴에게 부여할 수 있는 업무는 많지 않다. 운영자와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에 들러 신간을 살펴보고, 사무실 주변을 산책하고, 이따금 이런 글을 미리 읽어보며 문장이 더욱 간결해지거나 복잡해질 수는 없는지 판단해보는 일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연인 사이에서 이뤄지는 데이트에 가깝지 교육이나 실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 밖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인턴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소속감을 만족시키는 건 목에 걸 수 있는 플라스틱 인턴증과 minguhongmfg.com을 도메인네임으로 한 임시 이메일 주소뿐이다. 전용 책상 또한 따로 마련돼 있지 않으므로, 인턴은 운영자가 사용하는, 그리 넓지 않은 책상 일부를 운영자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업무용으로 섬세하게 설계된 의자가 아닌, 다리가 다소 긴 스툴에 걸터앉아.
이런 상황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친 뒤 얻는 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한 추억과 인턴으로 일했다는 이력 한 줄뿐일 것이다. 야심이 원대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공식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회사에는, 특히 방학이 시작할 무렵이면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support@minguhongmfg.com 앞으로 인턴에 관한 문의가 접수되곤 한다. 대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으로 관계는 마무리되지만, 중요한 건 무용해 보이는 일에 과감히 도전한다는 점이다. 관계를 맺는 또 다른 방법이다. 2020년을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한 thisisneverthat의 대표 박인욱은 언젠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무용해 보일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인턴 세 명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쳐갔다.
첫 번째 인턴은 입사한 지 하루 만에 퇴사했다. 그는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가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졸업을 앞두고 독립하기 전에 생산자로서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 게 좋을지 파악해보는 일이었다. 수행 방식으로 택한 운영자와의 대화에서 그는 스스로 부여한 업무를 완수했고, 그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턴을 둘 만큼 건실한 회사라는 사실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두 번째 인턴은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갈음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는 이 기간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 일지」를 작성하고, 아직 이렇다 할 로고가 없는 회사에 로고를 제안하는 일이었다. 업무는 태생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수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학교와 느닷없는 화상 회의까지 거친 끝에 운영자는 다음과 같이 업무를 정리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정기간행물,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업무는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일지 작성은 구글 스프레드시트상에서 이뤄졌다. 날짜, 와이파이 이름, 민구홍 매뉴팩처링과의 거리, 진행한 업무로 이뤄진 행은 일지의 주된 항목이 됐고, 이는 JSON(JavaScript Object Notation) 형식으로 전환돼 웹사이트와 연결됐다. 하루하루 일지가 채워지고, 제안한 로고가 쌓여갔다. 그는 과연 자신이 행복한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모든 게 순조로왔다. 머리를 식힐 겸 떠난 제주도 출장 이후 인턴은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인턴이 제안한 로고는 어느 것도 사용되지 않았다.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완수하지 못했지만, 행복만큼은 찾아냈으리라.
세 번째 인턴은 영화 이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급진적 지하 아나키스트 단체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독립 출판 서점 아르바이트를 막 그만 둔 참이었다.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합법적으로 지메일(Gmail)을 무화하는 일이었다. 수행 방식은 단순했다. 그는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지메일에 가입해 남은 이메일 주소를 선점하겠다고 말했다. 누구도 지메일에 가입할 수 없다면 지메일은 무화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자 논리였다. 공식적인 ‘구글 폰트의 친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으로서는 다소 꺼림직한 업무였지만, 지메일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의 개수에 제한이 없는 이상 문제는 없었다.
영문 소문자 또는 숫자로 이뤄진, 최소 여섯자에서 최대 서른 자. 지메일에서 요구하는 사용자명 규칙을 파악한 그는 곧장 업무를 시작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지메일 가입 페이지를 오갔다. 업무에 몰입한 뒤로는 점심을 거르는 날도 잦아졌다. 지메일에 가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림 잡아 1분. 한 시간이면 약 60개, 여덟 시간이면 약 480개, 열흘이면 4,800개, 한 달이면 1만 4,400개의 이메일 주소가 생성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턴을 위해 「무작위 지메일 사용자명 생성기」를 제작했다. 생성기는 지메일 규칙에 따라 0.1초에 하나씩 무작위로 사용자명을 생성한다. 1초면 60개, 1분이면 3,600개, 한 시간이면 21만 6,000개, 여덟 시간이면 172만 8,000개, 열흘이면 1,728만 개의 사용자명이 생성된다. 생성기는 그저 사용자명을 생성하기만 할 뿐이지만, 그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작위로 생성된 사용자명은 이따금이긴 하지만, 명확한 질서를 지닌 단어나 구절이나 문장을 이루기도 했다.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최대 30자짜리 엽편 소설이 생성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어떤 작가가 써낸 것보다 아름다웠고, 어떤 것에는 종교인들이 평생 찾아 헤매는 진리가 담겨 있었다. 생성기가 사용자명을 생성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인턴은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인 비슷한 것이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어의 질서를 이해해버린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여러 방식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합니다.
일찍이 「자주 하는 질문」에서 밝히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당장 내일 휴거가 일어나더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턴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회사에서는 인턴에게 교육과 실습을 목적으로 중요도가 높지 않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부여하고, 인턴은 회사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회사와 인턴이라는 관계가 작동하는 일반적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관계는 반복되기만 할 뿐 진전하지 않는다. 어느 쪽은 멍에를 질 수밖에 없는 이런 관계에는 위험이 도사리기 마련이다.
본디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숙주에 기생하는 마당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거의 모든 업무는 운영자 스스로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수행하는 데 무리가 있는 업무는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맺은 동업자들, 예컨대 가깝게는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 부탁하기도 한다.) 중요도가 높지 않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아예 처음부터 수행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피할 수 없다면 DRY(Don’t Repeat Yourself) 원칙에 따라 업무에 맞게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담당하는 편이다. 예컨대 10만 행이 넘는 스프레드시트 10만 장을 정리하거나 가로세로 10만 픽셀짜리 이미지 10만 장의 외곽선을 정리하는 데 네 시간이 소요된다면, 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장인 정신은 차라리 한 시간 만에 업무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두 시간, 해당 소프트웨어에 붙일 근사한 제목을 정하는 데 한 시간을 쏟는 것이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버그 탓에 다소 덜컹거릴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업무를 처리하는 한 시간 동안 운영자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앞으로 비슷한 업무가 있다면, 비록 제목이 바뀌겠지만, 기존 소프트웨어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은 무엇을 하는가. 이는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고,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같은 질문과 엇비슷하다. 수행할 업무는 인턴 자신이 스스로 부여하고, 진행 방식과 마감일 또한 자신이 정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업무가 회사에서 수행하기에 적절한지 판단하고, 업무가 무리 없이 진행되는지 중간중간 확인만 할 뿐이다. 업무를 완수하면 인턴은 회사를 떠난다.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회사에 재정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히지 않는 이상 민구홍 매뉴팩처링으로서는 사실 상관이 없다. 실패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인턴 자신의 몫이다. 사업가로서 수없이 실패를 겪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모든 일에서 반드시 성공할 필요는 없지만,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는 바가 적지 않다. 따라서 수행할 업무를 스스로 부여할 수 없다면, 즉 주체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인턴에게 부여할 수 있는 업무는 많지 않다. 운영자와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에 들러 신간을 살펴보고, 사무실 주변을 산책하고, 이따금 이런 글을 미리 읽어보며 문장이 더욱 간결해지거나 복잡해질 수는 없는지 판단해보는 일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연인 사이에서 이뤄지는 데이트에 가깝지 교육이나 실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 밖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인턴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소속감을 만족시키는 건 목에 걸 수 있는 플라스틱 인턴증과 minguhongmfg.com을 도메인네임으로 한 임시 이메일 주소뿐이다. 전용 책상 또한 따로 마련돼 있지 않으므로, 인턴은 운영자가 사용하는, 그리 넓지 않은 책상 일부를 운영자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업무용으로 섬세하게 설계된 의자가 아닌, 다리가 다소 긴 스툴에 걸터앉아.
이런 상황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친 뒤 얻는 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한 추억과 인턴으로 일했다는 이력 한 줄뿐일 것이다. 야심이 원대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공식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회사에는, 특히 방학이 시작할 무렵이면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support@minguhongmfg.com 앞으로 인턴에 관한 문의가 접수되곤 한다. 대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으로 관계는 마무리되지만, 중요한 건 무용해 보이는 일에 과감히 도전한다는 점이다. 관계를 맺는 또 다른 방법이다. 2020년을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한 thisisneverthat의 대표 박인욱은 언젠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무용해 보일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인턴 세 명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쳐갔다.
첫 번째 인턴은 입사한 지 하루 만에 퇴사했다. 그는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가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졸업을 앞두고 독립하기 전에 생산자로서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 게 좋을지 파악해보는 일이었다. 수행 방식으로 택한 운영자와의 대화에서 그는 스스로 부여한 업무를 완수했고, 그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턴을 둘 만큼 건실한 회사라는 사실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두 번째 인턴은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갈음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는 이 기간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 일지」를 작성하고, 아직 이렇다 할 로고가 없는 회사에 로고를 제안하는 일이었다. 업무는 태생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수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학교와 느닷없는 화상 회의까지 거친 끝에 운영자는 다음과 같이 업무를 정리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정기간행물,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업무는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일지 작성은 구글 스프레드시트상에서 이뤄졌다. 날짜, 와이파이 이름, 민구홍 매뉴팩처링과의 거리, 진행한 업무로 이뤄진 행은 일지의 주된 항목이 됐고, 이는 JSON(JavaScript Object Notation) 형식으로 전환돼 웹사이트와 연결됐다. 하루하루 일지가 채워지고, 제안한 로고가 쌓여갔다. 그는 과연 자신이 행복한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모든 게 순조로왔다. 머리를 식힐 겸 떠난 제주도 출장 이후 인턴은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인턴이 제안한 로고는 어느 것도 사용되지 않았다.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완수하지 못했지만, 행복만큼은 찾아냈으리라.
세 번째 인턴은 영화 이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급진적 지하 아나키스트 단체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독립 출판 서점 아르바이트를 막 그만 둔 참이었다. 스스로 부여한 업무는 합법적으로 지메일(Gmail)을 무화하는 일이었다. 수행 방식은 단순했다. 그는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지메일에 가입해 남은 이메일 주소를 선점하겠다고 말했다. 누구도 지메일에 가입할 수 없다면 지메일은 무화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자 논리였다. 공식적인 ‘구글 폰트의 친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으로서는 다소 꺼림직한 업무였지만, 지메일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의 개수에 제한이 없는 이상 문제는 없었다.
영문 소문자 또는 숫자로 이뤄진, 최소 여섯자에서 최대 서른 자. 지메일에서 요구하는 사용자명 규칙을 파악한 그는 곧장 업무를 시작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지메일 가입 페이지를 오갔다. 업무에 몰입한 뒤로는 점심을 거르는 날도 잦아졌다. 지메일에 가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림 잡아 1분. 한 시간이면 약 60개, 여덟 시간이면 약 480개, 열흘이면 4,800개, 한 달이면 1만 4,400개의 이메일 주소가 생성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턴을 위해 「무작위 지메일 사용자명 생성기」를 제작했다. 생성기는 지메일 규칙에 따라 0.1초에 하나씩 무작위로 사용자명을 생성한다. 1초면 60개, 1분이면 3,600개, 한 시간이면 21만 6,000개, 여덟 시간이면 172만 8,000개, 열흘이면 1,728만 개의 사용자명이 생성된다. 생성기는 그저 사용자명을 생성하기만 할 뿐이지만, 그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작위로 생성된 사용자명은 이따금이긴 하지만, 명확한 질서를 지닌 단어나 구절이나 문장을 이루기도 했다.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최대 30자짜리 엽편 소설이 생성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어떤 작가가 써낸 것보다 아름다웠고, 어떤 것에는 종교인들이 평생 찾아 헤매는 진리가 담겨 있었다. 생성기가 사용자명을 생성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인턴은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인 비슷한 것이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어의 질서를 이해해버린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여러 방식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