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간 없는 시간들
변형하는 시간 ..... 스벤 뤼티켄, 이한범 옮김
아프리카 TV의 지속 시간: 리얼의 무대화 ..... 강덕구
게임 오버와 서사 ..... 권택경
모든, 첫 번째 시간 ..... 현시원
역사의 성좌를 향하여: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에 관한 노트 ..... 장지한
Interview
A / B: 오민 × 방혜진 대담
Review
검색 엔진의 시대와 이미지의 새로운 위상: 데이비드 조슬릿의 『예술 이후』 ..... 문혜진
좀비를 자세히 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만 죽어 버린 건에 대하여 ..... 김보년
아쿠아리움과 잠수사의 시선 ..... 이정빈
Correspondence
아다치 마사오를 사이에 둔 편지 (2) ..... 김태용, 박솔뫼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유연주
동시대(성)에 관한 최근의 논쟁들이 보여 준 것처럼, 오늘날 시간(성)은 퍽 난처한 개념이 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책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러한 시간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유토피아적 역사를 상실한 ‘미래 이후’라는 시간에서부터, 일과 여가, 생산과소비의 구분이 완전히 소멸한 소비자본주의의 ‘24/7’의 시간, 또는 최근 급속한 기술 매체의 발달로 인한 ‘현재의 충격’에 이르기까지. 그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를 상실한 채 영원한 현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간은 끊임없는 승리를 장담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이 구조적 혁명은 대학을 기업화하고, 대중과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예술을 움직이게 하는 등 창조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문화로 만든다. 일찍이 알렉산더 클루게와 오스카 넥트는 이를 자본주의적 문화혁명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 또한 창조 경제를 살아가는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시간일 것이다.
영화-영상은 대표적인 시간 기반 매체(time based media)이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또한 현실의 시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과거 많은 작가와 감독들은 주어진 시간에서 해방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실천을 수행했다. 멀리는 여러 영화관을 수시로 오가며 영화를 자체적으로 편집하면서 관람하던 초현실주의자들과 그들이 만든 영화를, 좀 더 가까이로는 앤디 워홀의 지속이 두드러지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영화(motionless pictures)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후 포스트 포디즘이 일과 여가의 구분을 점차 지워 버림으로써, 이미 해방되었거나,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이 열렸다. 혹은 히토 슈타이얼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 영화-영상이 거주하는 미술관은 사회적 공장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그에 기반한 매체는 어떠한 영향을 받고, 다시 어떻게 시간을 변형시킬까.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오큘로』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번 호 특집은 ‘시간 없는 시간들’이다.
스벤 뤼티켄에 따르면, 오늘날 문화화된 경제에서 시간과 역사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시간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변형하는 시간」에서 그는 무빙 이미지가 미술관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돌아보며, 포스트 시네마적 상황에서 새로운 해방의 장소를 모색한다. 이는 오늘날 영상과 시간의 관계를 사고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이어지는 두 글은 영화에서 출발해 동시대 하위문화로 그 시선을 넓힌다. 강덕구는 아프리카 TV와 같은 실시간 방송에서 과거 영화의 급진적 실천이 퇴행적인 민낯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권택경은 최근 영화에도 도입된 비디오 게임의 루프물을 분석하며 좀비화된 신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려 낸다.
전시 공간도 시간에 기반한 매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전시장은 유독 시간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규범적인 전시 시간(과 기간)을 반대로 뒤집어 버리는가 하면, 언젠가는 한여름의 시간을 단무지처럼 반으로 쪼개 버리기도 했다. 현시원의 「모든, 첫 번째 시간」은 앨리스와 함께 하는 시간 탐험으로, 전시장에서 경험한 시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집의 마지막은 장지한의 「역사의 성좌를 향하여」가 장식한다. 그는 양혜규 작가론을 통해 오늘날 난관에 처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예술의 대응을 모색한다.
이번 호의 ‘인터뷰’에서는 오민 작가와 방혜진 평론가의 대담을 소개한다. 작가는 올해 7월에 있었던 전시 ‹Moving / Image›(기획 김해주)의 일환으로 ‹ABA Performance›를 선보였다. 대담은 공연 후 가졌던 아티스트 토크가 지면을 위해 확장된 것으로,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와 그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리뷰’에서는 세 편의 글을 선보인다. 이정빈은 박경근 작가의 신작 ‹군대: 60만의 초상›을, 김보년은 연상호 감독의 신작 ‹부산행›과 ‹서울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2013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조슬릿의 『예술 이후(After Art)』에 대한 문혜진의 리뷰를 수록한다. 끝으로, ‘서신 교환’에서 김태용과 박솔뫼는 2호에 이어 못다 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번에도 그들 사이에는 아다치 마사오가 있다.
『오큘로』의 시간에도 얼마간 변화가 있었다. 편집부는 현재 변화의 과정에 있다. 이번 호부터는 다소 축소된 인원이 오큘로를 꾸려 나간다. 시간에 관해 생각하는 자리이다 보니, 자연스레 잡지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3개월여의 시간을 편집부가 따로 또 같이 겪으면서 하나씩 숫자를 더해 나간다는 점에서, 주기가 정해진 잡지의 시간은 고전적인 시간관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2호에서 조지훈은 『오큘로』가 ‘만리길에 접어’들었음을 이야기했다.
약 6개월 전 출판 등록을 위한 잡지명을 고민하고 있을 때, 발행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오큘로: 01’이라고 하면 꼭 99호까지만 나올 것처럼 보이는데, ‘오큘로: 001’로 하면 어떨까요. 네, 좋아요. 숫자를 셈해 본다. 99 이상의 세 자리 숫자는 최소 100, 최대 999다. 『오큘로』는 ‘계간’ 영상전문비평지다. 전자는 25년, 후자는 약 25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때도 이미지는 움직이고 있을까. 우리는 ‘오큘로: 004’를 준비하고 있다. (정민구)
특집: 시간 없는 시간들
변형하는 시간 ..... 스벤 뤼티켄, 이한범 옮김
아프리카 TV의 지속 시간: 리얼의 무대화 ..... 강덕구
게임 오버와 서사 ..... 권택경
모든, 첫 번째 시간 ..... 현시원
역사의 성좌를 향하여: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에 관한 노트 ..... 장지한
Interview
A / B: 오민 × 방혜진 대담
Review
검색 엔진의 시대와 이미지의 새로운 위상: 데이비드 조슬릿의 『예술 이후』 ..... 문혜진
좀비를 자세히 보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만 죽어 버린 건에 대하여 ..... 김보년
아쿠아리움과 잠수사의 시선 ..... 이정빈
Correspondence
아다치 마사오를 사이에 둔 편지 (2) ..... 김태용, 박솔뫼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유연주
동시대(성)에 관한 최근의 논쟁들이 보여 준 것처럼, 오늘날 시간(성)은 퍽 난처한 개념이 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책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러한 시간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유토피아적 역사를 상실한 ‘미래 이후’라는 시간에서부터, 일과 여가, 생산과소비의 구분이 완전히 소멸한 소비자본주의의 ‘24/7’의 시간, 또는 최근 급속한 기술 매체의 발달로 인한 ‘현재의 충격’에 이르기까지. 그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를 상실한 채 영원한 현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간은 끊임없는 승리를 장담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이 구조적 혁명은 대학을 기업화하고, 대중과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예술을 움직이게 하는 등 창조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문화로 만든다. 일찍이 알렉산더 클루게와 오스카 넥트는 이를 자본주의적 문화혁명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 또한 창조 경제를 살아가는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시간일 것이다.
영화-영상은 대표적인 시간 기반 매체(time based media)이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또한 현실의 시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과거 많은 작가와 감독들은 주어진 시간에서 해방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실천을 수행했다. 멀리는 여러 영화관을 수시로 오가며 영화를 자체적으로 편집하면서 관람하던 초현실주의자들과 그들이 만든 영화를, 좀 더 가까이로는 앤디 워홀의 지속이 두드러지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영화(motionless pictures)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후 포스트 포디즘이 일과 여가의 구분을 점차 지워 버림으로써, 이미 해방되었거나,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이 열렸다. 혹은 히토 슈타이얼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 영화-영상이 거주하는 미술관은 사회적 공장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그에 기반한 매체는 어떠한 영향을 받고, 다시 어떻게 시간을 변형시킬까.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오큘로』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번 호 특집은 ‘시간 없는 시간들’이다.
스벤 뤼티켄에 따르면, 오늘날 문화화된 경제에서 시간과 역사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시간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변형하는 시간」에서 그는 무빙 이미지가 미술관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돌아보며, 포스트 시네마적 상황에서 새로운 해방의 장소를 모색한다. 이는 오늘날 영상과 시간의 관계를 사고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이어지는 두 글은 영화에서 출발해 동시대 하위문화로 그 시선을 넓힌다. 강덕구는 아프리카 TV와 같은 실시간 방송에서 과거 영화의 급진적 실천이 퇴행적인 민낯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권택경은 최근 영화에도 도입된 비디오 게임의 루프물을 분석하며 좀비화된 신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려 낸다.
전시 공간도 시간에 기반한 매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전시장은 유독 시간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규범적인 전시 시간(과 기간)을 반대로 뒤집어 버리는가 하면, 언젠가는 한여름의 시간을 단무지처럼 반으로 쪼개 버리기도 했다. 현시원의 「모든, 첫 번째 시간」은 앨리스와 함께 하는 시간 탐험으로, 전시장에서 경험한 시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집의 마지막은 장지한의 「역사의 성좌를 향하여」가 장식한다. 그는 양혜규 작가론을 통해 오늘날 난관에 처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예술의 대응을 모색한다.
이번 호의 ‘인터뷰’에서는 오민 작가와 방혜진 평론가의 대담을 소개한다. 작가는 올해 7월에 있었던 전시 ‹Moving / Image›(기획 김해주)의 일환으로 ‹ABA Performance›를 선보였다. 대담은 공연 후 가졌던 아티스트 토크가 지면을 위해 확장된 것으로,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와 그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리뷰’에서는 세 편의 글을 선보인다. 이정빈은 박경근 작가의 신작 ‹군대: 60만의 초상›을, 김보년은 연상호 감독의 신작 ‹부산행›과 ‹서울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2013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조슬릿의 『예술 이후(After Art)』에 대한 문혜진의 리뷰를 수록한다. 끝으로, ‘서신 교환’에서 김태용과 박솔뫼는 2호에 이어 못다 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번에도 그들 사이에는 아다치 마사오가 있다.
『오큘로』의 시간에도 얼마간 변화가 있었다. 편집부는 현재 변화의 과정에 있다. 이번 호부터는 다소 축소된 인원이 오큘로를 꾸려 나간다. 시간에 관해 생각하는 자리이다 보니, 자연스레 잡지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3개월여의 시간을 편집부가 따로 또 같이 겪으면서 하나씩 숫자를 더해 나간다는 점에서, 주기가 정해진 잡지의 시간은 고전적인 시간관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2호에서 조지훈은 『오큘로』가 ‘만리길에 접어’들었음을 이야기했다.
약 6개월 전 출판 등록을 위한 잡지명을 고민하고 있을 때, 발행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오큘로: 01’이라고 하면 꼭 99호까지만 나올 것처럼 보이는데, ‘오큘로: 001’로 하면 어떨까요. 네, 좋아요. 숫자를 셈해 본다. 99 이상의 세 자리 숫자는 최소 100, 최대 999다. 『오큘로』는 ‘계간’ 영상전문비평지다. 전자는 25년, 후자는 약 25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때도 이미지는 움직이고 있을까. 우리는 ‘오큘로: 004’를 준비하고 있다. (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