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영화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묶은 강연집이다. 강연의 장소들은 다채로운데, 자신의 주요한 활동무대인 도쿄는 물론이고,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해 미국의 예일대학교 등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구로사와 감독의 주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호러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곧 보편적인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며, 그 후 이어지는 강연은 오스 야스지로나 오시마 나기사와 같은 일본 거장들의 주요 작품부터 영화사, 영화 쇼트, 시나리오와 같은 영화 비평 및 기술적 내용, 그리고 영화 감독의 '일'에 대해서까지 실로 다양하다.
지극히 평이한 필체로 쓰여진 이 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실제로 영화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기도 하다), 그가 제기하는 이야기들은 영화 전문가는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생각해볼 묵직한 주제들이다. 이것은 물론 누구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실천을 통해 본능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2부에 해당하는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는 이케부쿠로의 시네마로사에서 진행된 연속 강의로써 감독의 영화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목차
I 영화강연 2004-2009
1 나의 영화론
2 영화의 쇼트에 관하여
3 오즈 야스지로에 관하여
4 영화와 로케 장소에 관하여
5 영화의 역사에 관하여
6 영화 감독의 일이란 무엇인가
7 오시마 나기사 강좌1: 〈일본춘가고〉
8 오시마 나기사 강좌2: 〈교사형〉
II 연속강의: 21세기의영화를말한다
강의 1 리얼과드라마
강의 2 지속과 단절
강의 3 인간
강의 4 21세기의영화
역자후기
저자 소개
구로사와 기요시 黒沢清
1955년 효고현 고베시 출생. 릿쿄대학 재학 중부터 8mm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하세가와 카즈히코, 소마이 신지에게 사사한 뒤 상업 영화계로 진출했다. 1997년 작품 <큐어>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2001년 작품 <회로>로 칸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도쿄 소나타>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해안가로의 여행>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202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약력
홍지영
한국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편집자 생활을 거친 뒤 일본의 릿쿄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일본의 도서관에서 영화책들을 읽고 미니시어터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다가 ‘상하이 영화’와 일본 영화에 흥미를 느끼고 중국으로 떠나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영화사를 공부했다. 북경대 박사과정을 수료(전쟁기 중일영화 교섭사, 전후 홍콩영화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중국어 및 일본어 영화를 번역하고 영화와 관련한 일본어 통역을 하며 영화 곁에서 지내고자 노력 중이다.
책 속에서
"저는 이 ‘세계’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에 관해 뭔가 이야기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은 영화에서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만 ‘세계’라고 대답해 버릴 때가 많은 듯도 합니다. 물론 영화에서 그리고자 하는 건 잔뜩 있지요. 우선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하지만 당연히 그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도쿄의 거리나 배우의 얼굴도 그리고 있지요. 90분이니 100분이니 하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는 표현도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 모두를 포함해, 영화라는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이라 해보죠. 그렇게 부르는 게 아무래도 제게는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호들갑처럼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영화 카메라는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노트에 글을 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기계입니다. 카메라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즉 오려내는 겁니다. 눈 앞의 사물이 발하는 빛을 그저 물리적으로 네모나게 오려내는 겁니다. 이게 카메라의 유일한 기능이라 해도 되겠지요." (영화는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이다 - 21페이지)
"재미있군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푹 빠져들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앞의 것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 두 편에선 자전거를 탄 남자와 어슬렁거리는 개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 두자면, 이 〈공장의 출구〉라고 하는 영화는 그저 공장 출구 앞에 카메라를 놓고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을 우연히 촬영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움직임 전부가 예정대로 연출된 겁니다. 일종의 픽션인 셈이지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다큐멘터리든 픽션이든 영화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리지요. 세계로부터 공간과 시간을 오려낸 게 영화입니다. 세계의 일부분이지요. 화면에 비치는 게 친구든 거리든 개든 상관없습니다. 전문적인 배우든 호화로운 의상을 몸에 걸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든 하등 상관없지요. 화면에 비치고 있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분이라면, 이를 영화라 불러도 전혀 거리낄 데가 없습니다. 이런 원리에서 보자면, 다큐멘터리든 드라마든 단편이든 장편이든 텔레비전이든 전부 영화가 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화와는 다릅니다. 애니메이션은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 위에 작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옮겨 그리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듯합니다. 나름대로 대단히 재미있고 수준 높은 예술 표현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사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성립 프로세스가 다른 거죠." (화면에 비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 88페이지)
"이 무렵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두가 영화를 대량으로 찍고 있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1960년대 말, 이 시절이 소위 말하는 일반 상업 영화 시대의 최후였던 게 아닐까요? 무슨 얘긴가 하면, ‘영상이라는 것=일반적 상업 영화, 극영화’였던 시대의 최후란 겁니다. 당연히 텔레비전은 이 시절에 이미 척척 대중화하여 영화가 자꾸만 침식되어 가고, 70년대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8mm, 비디오 등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자유자재로 촬영 가능한 시대로 돌입하기에 이르지요. 60년대 말은 바로 그 직전에 해당됩니다. 누군가가 뭔가 영화 같은 것을 찍고 싶다면 35mm 상업 영화 형태를 답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던 최후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별별 사람들이 상업 영화라는 틀을 빌어 영화를 만들고 있었지요. 그게 영화사(映畵社)든 한 사람의 작가든 간에, 어쨌든 그것밖에 영화를 표현 가능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던 시절이지요.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영화들이 그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감이 듭니다. 제 멋대로의 상상이지만요." (오시마 나기사 강좌 2: <교사형> - 131쪽)
"감시 카메라는 확실히 리얼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금방 싫증을 내는 관객의 시선을 억지로라도 잡아당기고 붙들어매어 ‘오오, 이건 뭐지’라거나 ‘더 보고 싶어’라거나 ‘이 세계에 푹 잠겨 있고파’ 하는 흥미를 적극적으로 환기시키는 요소가 거의 없지요. 흥미를 억지로라도 환기시키는 요소, 이게 흔히들 ‘드라마’라고 부르는 거겠지요. 뭐, ‘드라마’의 의미도 다양하니, 영화에서는 차라리 ‘이모션(emotion)’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모션’이란 말도 어딘가 감 잡기 어렵군요. 담담한 계열 영화에는 영화를 보다가 ‘뭐야, 이거’ 하고 마음이 끌리는 순간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뛰어난 영화라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돌연히 그런 순간이 다가오긴 하지만요. ‘그럼 그런 순간이란 뭐냐’라고 묻는다면, 역시 ‘드라마적 순간’이란 게 아닐까요? 물론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는 ‘드라마적 순간’이 도처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모습’이나 ‘분위기’, ‘기색’ 등이 앞뒤로 잔뜩 배치되어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영화 전체의 길이가 너무 길어져 버리지요. " (드라마적 순간을 기다린다 - 158쪽)
"현재 저는 이야기가 있는 일반 상업 영화를 찍고 있으니 각본부터 시작한다는 수순을 일단은 수용하고 늘 영화 제작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영화를 찍으려니 이 수순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재 상황이지요. 제작비가 1억 엔인가 드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도 때때로 ‘어째서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그 영화의 이야기가 존재해 버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고 맙니다.
각본이라고 하는 건 어쩌면 영화 제작을 한없이 부자유스럽게 해버리는 게 아닐까요? 자본가들이 고안한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합니다. 어째서 감독, 배우, 스태프 등 촬영 현장에 있는 전원이 ‘각본’ 혹은 ‘이야기’라고 하는 현장에서는 어딘지 애매하게만 존재하는 것에 지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물론 물질로서의 ‘각본’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일종의 계약서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요. 저는 여전히 이런 상황에 고민하면서, 그래도 애를 쓰며 어떻게든 각본대로 영화를 찍으려 매번 분투하고 있습니다." (촬영현장에서는 각본에 지배된다 - 180쪽)
책 소개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영화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묶은 강연집이다. 강연의 장소들은 다채로운데, 자신의 주요한 활동무대인 도쿄는 물론이고,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해 미국의 예일대학교 등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구로사와 감독의 주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호러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곧 보편적인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며, 그 후 이어지는 강연은 오스 야스지로나 오시마 나기사와 같은 일본 거장들의 주요 작품부터 영화사, 영화 쇼트, 시나리오와 같은 영화 비평 및 기술적 내용, 그리고 영화 감독의 '일'에 대해서까지 실로 다양하다.
지극히 평이한 필체로 쓰여진 이 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실제로 영화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기도 하다), 그가 제기하는 이야기들은 영화 전문가는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생각해볼 묵직한 주제들이다. 이것은 물론 누구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실천을 통해 본능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2부에 해당하는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는 이케부쿠로의 시네마로사에서 진행된 연속 강의로써 감독의 영화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목차
I 영화강연 2004-2009
1 나의 영화론
2 영화의 쇼트에 관하여
3 오즈 야스지로에 관하여
4 영화와 로케 장소에 관하여
5 영화의 역사에 관하여
6 영화 감독의 일이란 무엇인가
7 오시마 나기사 강좌1: 〈일본춘가고〉
8 오시마 나기사 강좌2: 〈교사형〉
II 연속강의: 21세기의영화를말한다
강의 1 리얼과드라마
강의 2 지속과 단절
강의 3 인간
강의 4 21세기의영화
역자후기
저자 소개
구로사와 기요시 黒沢清
1955년 효고현 고베시 출생. 릿쿄대학 재학 중부터 8mm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하세가와 카즈히코, 소마이 신지에게 사사한 뒤 상업 영화계로 진출했다. 1997년 작품 <큐어>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2001년 작품 <회로>로 칸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도쿄 소나타>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해안가로의 여행>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202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약력
홍지영
한국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편집자 생활을 거친 뒤 일본의 릿쿄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일본의 도서관에서 영화책들을 읽고 미니시어터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다가 ‘상하이 영화’와 일본 영화에 흥미를 느끼고 중국으로 떠나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영화사를 공부했다. 북경대 박사과정을 수료(전쟁기 중일영화 교섭사, 전후 홍콩영화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중국어 및 일본어 영화를 번역하고 영화와 관련한 일본어 통역을 하며 영화 곁에서 지내고자 노력 중이다.
책 속에서
"저는 이 ‘세계’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에 관해 뭔가 이야기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은 영화에서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만 ‘세계’라고 대답해 버릴 때가 많은 듯도 합니다. 물론 영화에서 그리고자 하는 건 잔뜩 있지요. 우선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하지만 당연히 그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도쿄의 거리나 배우의 얼굴도 그리고 있지요. 90분이니 100분이니 하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는 표현도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 모두를 포함해, 영화라는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이라 해보죠. 그렇게 부르는 게 아무래도 제게는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호들갑처럼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영화 카메라는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노트에 글을 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기계입니다. 카메라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즉 오려내는 겁니다. 눈 앞의 사물이 발하는 빛을 그저 물리적으로 네모나게 오려내는 겁니다. 이게 카메라의 유일한 기능이라 해도 되겠지요." (영화는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이다 - 21페이지)
"재미있군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푹 빠져들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앞의 것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 두 편에선 자전거를 탄 남자와 어슬렁거리는 개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 두자면, 이 〈공장의 출구〉라고 하는 영화는 그저 공장 출구 앞에 카메라를 놓고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을 우연히 촬영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움직임 전부가 예정대로 연출된 겁니다. 일종의 픽션인 셈이지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다큐멘터리든 픽션이든 영화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리지요. 세계로부터 공간과 시간을 오려낸 게 영화입니다. 세계의 일부분이지요. 화면에 비치는 게 친구든 거리든 개든 상관없습니다. 전문적인 배우든 호화로운 의상을 몸에 걸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든 하등 상관없지요. 화면에 비치고 있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분이라면, 이를 영화라 불러도 전혀 거리낄 데가 없습니다. 이런 원리에서 보자면, 다큐멘터리든 드라마든 단편이든 장편이든 텔레비전이든 전부 영화가 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화와는 다릅니다. 애니메이션은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 위에 작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옮겨 그리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듯합니다. 나름대로 대단히 재미있고 수준 높은 예술 표현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사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성립 프로세스가 다른 거죠." (화면에 비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 88페이지)
"이 무렵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두가 영화를 대량으로 찍고 있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1960년대 말, 이 시절이 소위 말하는 일반 상업 영화 시대의 최후였던 게 아닐까요? 무슨 얘긴가 하면, ‘영상이라는 것=일반적 상업 영화, 극영화’였던 시대의 최후란 겁니다. 당연히 텔레비전은 이 시절에 이미 척척 대중화하여 영화가 자꾸만 침식되어 가고, 70년대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8mm, 비디오 등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자유자재로 촬영 가능한 시대로 돌입하기에 이르지요. 60년대 말은 바로 그 직전에 해당됩니다. 누군가가 뭔가 영화 같은 것을 찍고 싶다면 35mm 상업 영화 형태를 답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던 최후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별별 사람들이 상업 영화라는 틀을 빌어 영화를 만들고 있었지요. 그게 영화사(映畵社)든 한 사람의 작가든 간에, 어쨌든 그것밖에 영화를 표현 가능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던 시절이지요.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영화들이 그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감이 듭니다. 제 멋대로의 상상이지만요." (오시마 나기사 강좌 2: <교사형> - 131쪽)
"감시 카메라는 확실히 리얼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금방 싫증을 내는 관객의 시선을 억지로라도 잡아당기고 붙들어매어 ‘오오, 이건 뭐지’라거나 ‘더 보고 싶어’라거나 ‘이 세계에 푹 잠겨 있고파’ 하는 흥미를 적극적으로 환기시키는 요소가 거의 없지요. 흥미를 억지로라도 환기시키는 요소, 이게 흔히들 ‘드라마’라고 부르는 거겠지요. 뭐, ‘드라마’의 의미도 다양하니, 영화에서는 차라리 ‘이모션(emotion)’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모션’이란 말도 어딘가 감 잡기 어렵군요. 담담한 계열 영화에는 영화를 보다가 ‘뭐야, 이거’ 하고 마음이 끌리는 순간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뛰어난 영화라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돌연히 그런 순간이 다가오긴 하지만요. ‘그럼 그런 순간이란 뭐냐’라고 묻는다면, 역시 ‘드라마적 순간’이란 게 아닐까요? 물론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는 ‘드라마적 순간’이 도처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모습’이나 ‘분위기’, ‘기색’ 등이 앞뒤로 잔뜩 배치되어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영화 전체의 길이가 너무 길어져 버리지요. " (드라마적 순간을 기다린다 - 158쪽)
"현재 저는 이야기가 있는 일반 상업 영화를 찍고 있으니 각본부터 시작한다는 수순을 일단은 수용하고 늘 영화 제작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영화를 찍으려니 이 수순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재 상황이지요. 제작비가 1억 엔인가 드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도 때때로 ‘어째서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그 영화의 이야기가 존재해 버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고 맙니다.
각본이라고 하는 건 어쩌면 영화 제작을 한없이 부자유스럽게 해버리는 게 아닐까요? 자본가들이 고안한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합니다. 어째서 감독, 배우, 스태프 등 촬영 현장에 있는 전원이 ‘각본’ 혹은 ‘이야기’라고 하는 현장에서는 어딘지 애매하게만 존재하는 것에 지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물론 물질로서의 ‘각본’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일종의 계약서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요. 저는 여전히 이런 상황에 고민하면서, 그래도 애를 쓰며 어떻게든 각본대로 영화를 찍으려 매번 분투하고 있습니다." (촬영현장에서는 각본에 지배된다 - 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