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리투아니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영화 제작자, 시인 요나스 메카스는 1949년 독일을 거쳐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매일 관찰한 것을 기록하는 일종의 영화 일기(film diary)라는 형식을 처음으로 개발했던 그는 곧 뉴욕 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구자가 된다.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뉴욕의 빌리지 보이스에 매주 전 세계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무비 저널' 칼럼을 기고했는데, 이 책은 그가 진행했던 수많은 인터뷰 가운데 84개를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또한 인터뷰와 함께 특별히 메카스 본인이 선별한 한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사진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1960년대와 7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위대한 예술가이면서, 영화작가협동조합과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시네마테크의 설립자로 누구보다 아방가르드 예술을 위해 평생을 분투했던 요나스 메카스는 이 책 곳곳에 영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함께 사랑했던 영화와 동료, 친구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차례
제롬 힐과의 대화: 불가사의한 잠재의식
비토리오 데 세타 미국에서 길을 잃다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 최상의 예술로서 시네마에 대하여
스톰 데 히르쉬와 루이스 브리간테가 잭 스미스와 켄 제이콥스를 말하다
조지 쿠차와 마이크 쿠차, 브롱크스를 떠나다
마이크 게츠가 워홀의 〈잠〉 상영을 말하다
스톰 데 히르쉬, 첫 장편 영화를 말하다
앤디 워홀과의 대화
니코 파파타키스가 〈심연〉을 말하다
익명의 누군가가 〈사랑의 찬가〉을 말하다
쿠차 선언
나오미 레빈과의 대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
스탠 반더비크가 무비-드롬을 말하다
테일러 미드와의 대화
클래스 올덴버그로부터 얻은 메모들
셜리 클라크가 베를린 필름 심포지엄에서
알버트 메이즐즈와 데이비드 메이즐즈와의 대화
토니 콘래드의 〈플리커〉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와의 대화
루이 마르코렐, 셜리 클라크, 라이오넬 로고신, 루이스 브리간테, 요나스 메카스 사이에서 나눈 대화
스티브 더키가 섬광을 말하다
로절린드 스티븐슨과의 대화
피터 쿠벨카와의 대화
뉴욕영화제에서 기록한 것들: 앰버그, 파졸리니, 타일러, 시트니, 새리스
새로운 이탈리아 영화에 관하여 리노 미치케, 브루노 토리와 나눈 대화
마르코풀로스가 〈그녀 자신으로 그 자신〉을 말하다
바바라 루빈과 존 카바노프와의 대화
켄 제이콥스가 밀레니엄필름워크숍을 말하다
존 호프세스가 새로운 캐나다 영화를 말하다
영화작가협동조합이 경찰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다
셜리 클라크가 〈제이슨의 초상〉을 말하다
존과 제임스 휘트니와 컴퓨터 시네마에 관하여, 마이클 휘트니와 함께
제이슨 홀리데이와의 대화
로셀리니가 〈루이 14세의 권력쟁취〉를 말하다
스티븐 드워스킨이 런던 영화작가협동조합을 말하다
조지 쿠차, 영화 심사위원…
나오미 레빈과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장난
쿠벨카가 크노케-르-주트 소식을 전하다
로버트 다우니의 〈상처난 팔꿈치〉
로버트 크레이머가 〈디 엣지〉를 말하다
두 소녀가 영화를 만들다: 안드레아 드워킨과 그레첸 랑헬트
대중 VS. 뉴욕 영화제
마르코풀로스의 독일 텔레비전 작업에 남기는 노트
프랭크 쿠엔슬러: 시인, 영화에서 길을 잃다
로버트 다우니와 마샬 루이스
유키하사 이소베, 바람 위의 영사
아녜스 바르다: 할리우드와 도피주의에 관한 모든 것
수전 손택과의 대화
에밀 드 안토니오와의 대화
찰스 헨리 포드, 〈조니 미노타우로스〉를 옹호하다
〈마하고니〉의 해리 스미스
래리 리버스, 샌디, 그리고 여성해방
황홀경에 관하여 피터 쿠벨카와 나눈 대화
존 카사베츠가 자신의 작업 관행을 말하다
두샹 마카베예프가 빌헬름 라이히를 말하다
〈중앙지대〉를 촬영 중인 마이클 스노우
두샹 마카베예프가 빌헬름 라이히를 말하다[이어서]
리키 리콕이 8MM 사운드 카메라의 미래를 꿈꾸다
바바라 루빈이 브라차 루빈으로 변모하다
〈슬픔과 동정〉의 마르셀 오퓔스
크리스티나 노드스트롬이 제1회 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여성 영화작가, 넬리 캐플랜
스탠 반더비크와의 대화
존 휘트니가 스탠 반더비크와의 대화에 함께하다
도나타스 바니오니스가 〈솔라리스〉를 말하다
홀리스 프램프턴의 〈하팍스 레고메나〉
제2회 국제고양이영화제에서 나눈 대화
케네스 앵거와의 대화
스탠 브래키지: 단어들
스탠 브래키지가 명예로운 예술가들에 대해, 영화 교육에 대해, 그리고 수많은 다른 주제들에 대해 말하다.
비바로부터 받은 베르톨루치와 〈블루 무비〉에 관한 메모
프램프턴, 마르코풀로스, 리차드 S. 베스와 주고 받은 메모들
농장으로부터 온 홀리스 프램프턴의 메모
안나 카리나, 영화작가
래리 고트하임의 〈지평선〉
홀리스 프램프턴이 그의 작업과 삶을 이야기하다
리차드 포먼의 마음의 눈으로 본 켄 제이콥스
스탠 브래키지가 프램프턴에 대해
브루스 베일리의 일기로부터, 〈로슬린 로맨스〉의 촬영
홀리스 프램프턴이 〈마젤란 해협〉을 말하다
마이클 스노우가 〈윌마 쇼언에 의한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데니스 영 덕분)〉를 말하다
〈퍼포머의 삶〉의 이본느 라이너
캐롤리 슈니먼과 마이클 스노우에게 받은 메모
바이오그래피
영화 목록
역자의 말
저자 소개
요나스 메카스
1922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요나스 메카스는 1949년 독일 나치를 피해 뉴욕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1954년 <필름 컬처> 잡지를 창간했고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빌리지 보이스에 '무비 저널'을 기고했다. 1962년 영화작가협동조합, 1964년 영화작가 시네마테크를 설립했다. 또한 그는 영화감독이자 위대한 예술가로 많은 영화와 25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브리그>로 1963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월든>(1969), <리투아니아 여행의 회상>(1972), <잠 못 이루는 밤 이야기>(2011), <행복한 사람의 삶에서 나온 아웃테이크>(2011)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2007년에는 1년 동안 매일 한 편의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영화 유통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극장 뿐 아니라 서펀타인 갤러리, 퐁피두 센터, 뉴욕현대미술관,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등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소개되고 소장되었다. 2019년 1월 23일 브루클린의 자택에서 향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소개
이여로
2019년부터 글과 책을 만들고 있다. 별 생각 없이 웹진에 올린 소설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이론적 기반 위에서 비평과 창작을 이해하고 모임이나 기획 등으로 활동을 다원화하고 있다. 2019년 아티스트북 『긴 끈』을 만들고 2020년 한국문학 앤솔로지 『셋 이상이 모여』를 편집했으며 2021년 「아마추어리즘의 사회, 그리고 예술」 등의 평론을 썼다. 서점 고요서사와 함께 워크숍 《들뢰즈에 대한 것은 아닌》을 22년까지 진행한다.
책 속에서
"유럽에서 감독들은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형식으로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형식을 제한하면 내용도 제한됩니다. 허용된 방식으로만 작업하게 되죠. 뉴욕에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를 그만뒀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자유는 우리에게 극한까지 나아가라는(혹은 들어가 보라는) 거대한 요구를 합니다. 그때 우리 중에서도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그러한 작업을 했죠.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에 너무 갇혀 있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언가에 너무 매여 있어요." (21페이지, 스톰 데 히르쉬와 루이스 브리간테가 잭 스미스와 켄 제이콥스를 말하다)
"배급센터나 조합에 있는 각각의 영화들은 특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개별 영화는 저마다 고유한 관객을 가져요. 그것이 유일한 차이고 그것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테죠.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주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기에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고요. 우리가 그냥 다 뒤죽박죽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입니다. 이런 뒤섞임, 혼란함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일부예요. 우리는 분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영화는 하나입니다." (56페이지, 루이 마르코렐, 셜리 클라크, 라이오넬 로고신, 루이스 브리간테, 요나스 메카스 사이에서 나눈 대화)
"그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브라질에는 굶주림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혼의 굶주림이라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형식과 내용은 시공간에 따른 이러한 요구와 즉각적으로 연결되죠. 당신이 언더그라운드 영화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브라질의 영화가 브라질 사람들을 반영하는 만큼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영화도 미국인들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59페이지, 루이 마르코렐, 셜리 클라크, 라이오넬 로고신, 루이스 브리간테, 요나스 메카스 사이에서 나눈 대화)
"당신의 영화가 나를 괴롭게 했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당신은 지금까지 작가였습니다. 단어를 갖고 하는, 글쓰기 공예에 푹 빠져 있었죠. 당신의 책에서 당신의 현존을 발견합니다. 읽기는 다른 모든 예술처럼 단계별로 진행돼요. 문장에서 문장으로, 문단에서 문단으로, 그리고 거기에 의미와 언어, 구문 등의 특정한 움직임이 있어 계속 나아가고 흥미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 자신을 다른 매체로 번역했어요. 그리고 내가 당신의 영화를 통해, 순간에서 순간으로, 단계별로 나아갈 때, 나는 얼마나 모든 것이 잘 만들어졌고 계산되었고 구성되었는지를 봅니다. 하지만 무언가 빠져 있는 것 같고 번역 과정에서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너무 평범하고, 너무 헐벗었어요. 당신의 글쓰기에서 당신은 온전히 거기에 있고 당신 사고의 모든 굴곡, 감정이 단어를 통해 전달됩니다. 당신의 영화에서는 미묘한 세부요소들이 빠져 나갈 길을 잃고 기술과 장비 등에 갇혀 있는 것을 느껴요." (132페이지, 수전 손택과의 대화)
"퍼포먼스를 포기했다고 느끼진 않아요. 퍼포먼스나 소위 말하는 쇼에 참여할 때, 나는 다만 퍼포머입니다. 개입하지 않는 감독이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그건 직관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퍼포밍을 즐기는 일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죠.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점점 수고스러워요. 하지만 그건 내게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만들기의 과정과 관련된 것이죠. 그게 무엇인지 여전히 확실하진 않지만 오직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연결지어서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영화 만들기는 일종의 계시였고 내가 만들어 왔던 것의 완전히 바깥에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자 기쁨이었어요. 내 말은, 카메라 렌즈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본다는 것이요." (258페이지, <퍼포머의 삶>의 이본느 라이너)
책 소개
리투아니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영화 제작자, 시인 요나스 메카스는 1949년 독일을 거쳐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매일 관찰한 것을 기록하는 일종의 영화 일기(film diary)라는 형식을 처음으로 개발했던 그는 곧 뉴욕 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구자가 된다.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뉴욕의 빌리지 보이스에 매주 전 세계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무비 저널' 칼럼을 기고했는데, 이 책은 그가 진행했던 수많은 인터뷰 가운데 84개를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또한 인터뷰와 함께 특별히 메카스 본인이 선별한 한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사진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1960년대와 7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위대한 예술가이면서, 영화작가협동조합과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시네마테크의 설립자로 누구보다 아방가르드 예술을 위해 평생을 분투했던 요나스 메카스는 이 책 곳곳에 영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함께 사랑했던 영화와 동료, 친구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차례
제롬 힐과의 대화: 불가사의한 잠재의식
비토리오 데 세타 미국에서 길을 잃다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 최상의 예술로서 시네마에 대하여
스톰 데 히르쉬와 루이스 브리간테가 잭 스미스와 켄 제이콥스를 말하다
조지 쿠차와 마이크 쿠차, 브롱크스를 떠나다
마이크 게츠가 워홀의 〈잠〉 상영을 말하다
스톰 데 히르쉬, 첫 장편 영화를 말하다
앤디 워홀과의 대화
니코 파파타키스가 〈심연〉을 말하다
익명의 누군가가 〈사랑의 찬가〉을 말하다
쿠차 선언
나오미 레빈과의 대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
스탠 반더비크가 무비-드롬을 말하다
테일러 미드와의 대화
클래스 올덴버그로부터 얻은 메모들
셜리 클라크가 베를린 필름 심포지엄에서
알버트 메이즐즈와 데이비드 메이즐즈와의 대화
토니 콘래드의 〈플리커〉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와의 대화
루이 마르코렐, 셜리 클라크, 라이오넬 로고신, 루이스 브리간테, 요나스 메카스 사이에서 나눈 대화
스티브 더키가 섬광을 말하다
로절린드 스티븐슨과의 대화
피터 쿠벨카와의 대화
뉴욕영화제에서 기록한 것들: 앰버그, 파졸리니, 타일러, 시트니, 새리스
새로운 이탈리아 영화에 관하여 리노 미치케, 브루노 토리와 나눈 대화
마르코풀로스가 〈그녀 자신으로 그 자신〉을 말하다
바바라 루빈과 존 카바노프와의 대화
켄 제이콥스가 밀레니엄필름워크숍을 말하다
존 호프세스가 새로운 캐나다 영화를 말하다
영화작가협동조합이 경찰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다
셜리 클라크가 〈제이슨의 초상〉을 말하다
존과 제임스 휘트니와 컴퓨터 시네마에 관하여, 마이클 휘트니와 함께
제이슨 홀리데이와의 대화
로셀리니가 〈루이 14세의 권력쟁취〉를 말하다
스티븐 드워스킨이 런던 영화작가협동조합을 말하다
조지 쿠차, 영화 심사위원…
나오미 레빈과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장난
쿠벨카가 크노케-르-주트 소식을 전하다
로버트 다우니의 〈상처난 팔꿈치〉
로버트 크레이머가 〈디 엣지〉를 말하다
두 소녀가 영화를 만들다: 안드레아 드워킨과 그레첸 랑헬트
대중 VS. 뉴욕 영화제
마르코풀로스의 독일 텔레비전 작업에 남기는 노트
프랭크 쿠엔슬러: 시인, 영화에서 길을 잃다
로버트 다우니와 마샬 루이스
유키하사 이소베, 바람 위의 영사
아녜스 바르다: 할리우드와 도피주의에 관한 모든 것
수전 손택과의 대화
에밀 드 안토니오와의 대화
찰스 헨리 포드, 〈조니 미노타우로스〉를 옹호하다
〈마하고니〉의 해리 스미스
래리 리버스, 샌디, 그리고 여성해방
황홀경에 관하여 피터 쿠벨카와 나눈 대화
존 카사베츠가 자신의 작업 관행을 말하다
두샹 마카베예프가 빌헬름 라이히를 말하다
〈중앙지대〉를 촬영 중인 마이클 스노우
두샹 마카베예프가 빌헬름 라이히를 말하다[이어서]
리키 리콕이 8MM 사운드 카메라의 미래를 꿈꾸다
바바라 루빈이 브라차 루빈으로 변모하다
〈슬픔과 동정〉의 마르셀 오퓔스
크리스티나 노드스트롬이 제1회 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여성 영화작가, 넬리 캐플랜
스탠 반더비크와의 대화
존 휘트니가 스탠 반더비크와의 대화에 함께하다
도나타스 바니오니스가 〈솔라리스〉를 말하다
홀리스 프램프턴의 〈하팍스 레고메나〉
제2회 국제고양이영화제에서 나눈 대화
케네스 앵거와의 대화
스탠 브래키지: 단어들
스탠 브래키지가 명예로운 예술가들에 대해, 영화 교육에 대해, 그리고 수많은 다른 주제들에 대해 말하다.
비바로부터 받은 베르톨루치와 〈블루 무비〉에 관한 메모
프램프턴, 마르코풀로스, 리차드 S. 베스와 주고 받은 메모들
농장으로부터 온 홀리스 프램프턴의 메모
안나 카리나, 영화작가
래리 고트하임의 〈지평선〉
홀리스 프램프턴이 그의 작업과 삶을 이야기하다
리차드 포먼의 마음의 눈으로 본 켄 제이콥스
스탠 브래키지가 프램프턴에 대해
브루스 베일리의 일기로부터, 〈로슬린 로맨스〉의 촬영
홀리스 프램프턴이 〈마젤란 해협〉을 말하다
마이클 스노우가 〈윌마 쇼언에 의한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데니스 영 덕분)〉를 말하다
〈퍼포머의 삶〉의 이본느 라이너
캐롤리 슈니먼과 마이클 스노우에게 받은 메모
바이오그래피
영화 목록
역자의 말
저자 소개
요나스 메카스
1922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요나스 메카스는 1949년 독일 나치를 피해 뉴욕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1954년 <필름 컬처> 잡지를 창간했고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빌리지 보이스에 '무비 저널'을 기고했다. 1962년 영화작가협동조합, 1964년 영화작가 시네마테크를 설립했다. 또한 그는 영화감독이자 위대한 예술가로 많은 영화와 25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브리그>로 1963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월든>(1969), <리투아니아 여행의 회상>(1972), <잠 못 이루는 밤 이야기>(2011), <행복한 사람의 삶에서 나온 아웃테이크>(2011)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2007년에는 1년 동안 매일 한 편의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영화 유통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극장 뿐 아니라 서펀타인 갤러리, 퐁피두 센터, 뉴욕현대미술관,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등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소개되고 소장되었다. 2019년 1월 23일 브루클린의 자택에서 향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소개
이여로
2019년부터 글과 책을 만들고 있다. 별 생각 없이 웹진에 올린 소설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이론적 기반 위에서 비평과 창작을 이해하고 모임이나 기획 등으로 활동을 다원화하고 있다. 2019년 아티스트북 『긴 끈』을 만들고 2020년 한국문학 앤솔로지 『셋 이상이 모여』를 편집했으며 2021년 「아마추어리즘의 사회, 그리고 예술」 등의 평론을 썼다. 서점 고요서사와 함께 워크숍 《들뢰즈에 대한 것은 아닌》을 22년까지 진행한다.
책 속에서
"유럽에서 감독들은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형식으로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형식을 제한하면 내용도 제한됩니다. 허용된 방식으로만 작업하게 되죠. 뉴욕에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를 그만뒀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자유는 우리에게 극한까지 나아가라는(혹은 들어가 보라는) 거대한 요구를 합니다. 그때 우리 중에서도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그러한 작업을 했죠.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에 너무 갇혀 있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언가에 너무 매여 있어요." (21페이지, 스톰 데 히르쉬와 루이스 브리간테가 잭 스미스와 켄 제이콥스를 말하다)
"배급센터나 조합에 있는 각각의 영화들은 특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개별 영화는 저마다 고유한 관객을 가져요. 그것이 유일한 차이고 그것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테죠.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주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기에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고요. 우리가 그냥 다 뒤죽박죽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입니다. 이런 뒤섞임, 혼란함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일부예요. 우리는 분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영화는 하나입니다." (56페이지, 루이 마르코렐, 셜리 클라크, 라이오넬 로고신, 루이스 브리간테, 요나스 메카스 사이에서 나눈 대화)
"그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브라질에는 굶주림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혼의 굶주림이라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형식과 내용은 시공간에 따른 이러한 요구와 즉각적으로 연결되죠. 당신이 언더그라운드 영화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브라질의 영화가 브라질 사람들을 반영하는 만큼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영화도 미국인들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59페이지, 루이 마르코렐, 셜리 클라크, 라이오넬 로고신, 루이스 브리간테, 요나스 메카스 사이에서 나눈 대화)
"당신의 영화가 나를 괴롭게 했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당신은 지금까지 작가였습니다. 단어를 갖고 하는, 글쓰기 공예에 푹 빠져 있었죠. 당신의 책에서 당신의 현존을 발견합니다. 읽기는 다른 모든 예술처럼 단계별로 진행돼요. 문장에서 문장으로, 문단에서 문단으로, 그리고 거기에 의미와 언어, 구문 등의 특정한 움직임이 있어 계속 나아가고 흥미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 자신을 다른 매체로 번역했어요. 그리고 내가 당신의 영화를 통해, 순간에서 순간으로, 단계별로 나아갈 때, 나는 얼마나 모든 것이 잘 만들어졌고 계산되었고 구성되었는지를 봅니다. 하지만 무언가 빠져 있는 것 같고 번역 과정에서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너무 평범하고, 너무 헐벗었어요. 당신의 글쓰기에서 당신은 온전히 거기에 있고 당신 사고의 모든 굴곡, 감정이 단어를 통해 전달됩니다. 당신의 영화에서는 미묘한 세부요소들이 빠져 나갈 길을 잃고 기술과 장비 등에 갇혀 있는 것을 느껴요." (132페이지, 수전 손택과의 대화)
"퍼포먼스를 포기했다고 느끼진 않아요. 퍼포먼스나 소위 말하는 쇼에 참여할 때, 나는 다만 퍼포머입니다. 개입하지 않는 감독이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그건 직관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퍼포밍을 즐기는 일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죠.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점점 수고스러워요. 하지만 그건 내게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만들기의 과정과 관련된 것이죠. 그게 무엇인지 여전히 확실하진 않지만 오직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연결지어서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영화 만들기는 일종의 계시였고 내가 만들어 왔던 것의 완전히 바깥에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자 기쁨이었어요. 내 말은, 카메라 렌즈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본다는 것이요." (258페이지, <퍼포머의 삶>의 이본느 라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