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 : 118×X169mm
면수 : 88쪽
지은이 : 문서진
편집 : 김영글
디자인 : 단칸
펴낸곳 : 돛과닻
발행 : 2022년 10월 28일
ISBN : 979-11-968501-9-7
호수 위에 홀로 선 사람
매일 삽으로 눈을 쌓아 올려
봄이 되면 사라질 섬을 만들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삽질의 기록,
호수 일지
돛과닻의 첫 번째 총서로 선보이는 ‘작업의 기록’은 예술가의 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시간과 품이 드는 수행적 작업을 할 때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진행 과정에서, 혹은 전후에, 꼼꼼한 텍스트로 기록을 남긴다. 그러나 그 기록은 영상이나 사진과 같이 시간과 공간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매체에 밀려 부수적인 자료로 여겨지곤 한다. 사람과 함께 어떤 시간을 통과한 글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닌다는 믿음으로, 창작의 주체가 작업 과정에서 성실하게 직조해낸 언어를 잘 보듬어 독자에게 건네려 한다.
시리즈의 첫 책으로 『호수 일지』를 펴낸다. 『호수 일지』는 문서진 미술작가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에 한 달간 머무르면서 진행한 퍼포먼스 작업 <살아있는 섬>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 호수 위에 매일 삽으로 눈을 쌓아올려, 봄이면 사라질 일시적 섬을 만들기 시작한다. 영하의 기온 속에 섬의 면적이 점점 불어날수록 그 무게로 인해 호수의 표면이 깨져 물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커진다. 하지만 작가는 삽질을 계속한다. 자신이 이 작업을 왜 수행하는지 모르는 채로, 호수가 들려줄 대답을 기다리면서. 그 느리고 고요한 시간이 쌓여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삽질의 기록이 되었다.
저자는 매일 삽질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일지를 기록했다. 일지의 첫 줄에는 최고온도와 최저온도, 바람의 세기와 눈의 유무 등 그날의 기상 정보를 꼼꼼히 적는다. 그리고 일지의 마지막 줄은 대부분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이 호수가 내일도 무사하기를 빈다는 말로. 작업 과정의 대부분이 영하를 오가는 추운 날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호수의 안녕을 비는 마음이 호수를 비롯해 그것을 잠시 터전 삼은 나의 안녕과 세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까지 확장되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헛된 일을 일컬어 ‘삽질’이라 부르곤 한다. 삽으로 땅을 힘들게 팠는데 거기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한 경우로부터 유래한 표현이다. 통속적인 의미에서라면 삽질 중의 삽질로 예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개는 들이는 노력에 비해 금전적 보상을 얻을 수 없어 생활의 안정적인 조건을 갖추기 어렵고, 세상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만한 이해와 성취를 얻어내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의 삽질은 호수를 벗어나 예술의 의미를 되묻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이 세상의 안녕에 대한 감각을 매 순간 복원하려 애쓰는 사람의 의지가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시리즈 소개]
작업의 기록
‘작업의 기록’은 수행적인 작업의 과정을 기록한 창작자의 글을 소개하는 작은 총서입니다. 때로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고 때로는 견고히 쌓아올린 돌탑 같은 예술의 시간을 담습니다. 언어의 몸에 새긴 기록이 다른 매체의 부속물이 아니라 온전한 작품으로서 독자와 만나, 예술의 존재 의미를 묻는 또 다른 시간의 문을 열어주기를 꿈꿉니다.
호수 위에 홀로 선 사람
매일 삽으로 눈을 쌓아 올려
봄이 되면 사라질 섬을 만들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삽질의 기록,
호수 일지
돛과닻의 첫 번째 총서로 선보이는 ‘작업의 기록’은 예술가의 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시간과 품이 드는 수행적 작업을 할 때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진행 과정에서, 혹은 전후에, 꼼꼼한 텍스트로 기록을 남긴다. 그러나 그 기록은 영상이나 사진과 같이 시간과 공간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매체에 밀려 부수적인 자료로 여겨지곤 한다. 사람과 함께 어떤 시간을 통과한 글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닌다는 믿음으로, 창작의 주체가 작업 과정에서 성실하게 직조해낸 언어를 잘 보듬어 독자에게 건네려 한다.
시리즈의 첫 책으로 『호수 일지』를 펴낸다. 『호수 일지』는 문서진 미술작가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에 한 달간 머무르면서 진행한 퍼포먼스 작업 <살아있는 섬>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 호수 위에 매일 삽으로 눈을 쌓아올려, 봄이면 사라질 일시적 섬을 만들기 시작한다. 영하의 기온 속에 섬의 면적이 점점 불어날수록 그 무게로 인해 호수의 표면이 깨져 물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커진다. 하지만 작가는 삽질을 계속한다. 자신이 이 작업을 왜 수행하는지 모르는 채로, 호수가 들려줄 대답을 기다리면서. 그 느리고 고요한 시간이 쌓여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삽질의 기록이 되었다.
저자는 매일 삽질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일지를 기록했다. 일지의 첫 줄에는 최고온도와 최저온도, 바람의 세기와 눈의 유무 등 그날의 기상 정보를 꼼꼼히 적는다. 그리고 일지의 마지막 줄은 대부분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이 호수가 내일도 무사하기를 빈다는 말로. 작업 과정의 대부분이 영하를 오가는 추운 날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호수의 안녕을 비는 마음이 호수를 비롯해 그것을 잠시 터전 삼은 나의 안녕과 세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까지 확장되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헛된 일을 일컬어 ‘삽질’이라 부르곤 한다. 삽으로 땅을 힘들게 팠는데 거기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한 경우로부터 유래한 표현이다. 통속적인 의미에서라면 삽질 중의 삽질로 예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개는 들이는 노력에 비해 금전적 보상을 얻을 수 없어 생활의 안정적인 조건을 갖추기 어렵고, 세상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만한 이해와 성취를 얻어내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의 삽질은 호수를 벗어나 예술의 의미를 되묻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이 세상의 안녕에 대한 감각을 매 순간 복원하려 애쓰는 사람의 의지가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시리즈 소개]
작업의 기록
‘작업의 기록’은 수행적인 작업의 과정을 기록한 창작자의 글을 소개하는 작은 총서입니다. 때로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고 때로는 견고히 쌓아올린 돌탑 같은 예술의 시간을 담습니다. 언어의 몸에 새긴 기록이 다른 매체의 부속물이 아니라 온전한 작품으로서 독자와 만나, 예술의 존재 의미를 묻는 또 다른 시간의 문을 열어주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