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해방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투쟁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다”
“금세기 어떤 전쟁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자행하는 절멸 캠페인에 근접조차 하지 않는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은 75년간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파괴해 온 이스라엘에 반격을 개시했다. 그 직후 시작된 이스라엘의 보복은 다섯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몇 달간 계속된 공격으로 가자 주민 230만여 명 중 30,000여 명이 사망했고 70,000여 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150만여 명이 이집트 국경에 인접한 지역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금세기 어떤 전쟁도 비교될 수 없는 규모와 강도로 대형 폭탄을 수없이 쏟아부었고, 집, 병원, 학교, 기반 시설, 종교 기관, 문화 유적지를 가리지 않고 민간인 거주 지역의 건물 70퍼센트를 파괴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수치일 뿐이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공격 초기부터 공언한 대로 가자 지구를 완전히 제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가 공격 초기에 선언했듯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로 취급하며 법과 상식을 노골적으로 어기는 중이다. 피난처인 유엔 학교와 병원, 종교 시설을 폭격하고 구호품 반입을 차단하고 있다. 북부 가자 주민 70만 명은 동물 사료로 연명 중이며, 동물 사료를 소화할 수 없는 아이들이 그로 인해 사망한다. 가자 주민은 물론이고 기자, 의료진, 유엔 직원도 표적 살해하고 있다. 강제 대피령을 내린 뒤 피난 행렬을 폭격했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감옥으로 끌고 가 고문했다. 산모는 마취제 없이 병원 바닥에서 제왕 절개 수술을 받고 신생아는 추위와 영양 부족, 감염으로 생후 며칠 만에 죽는다. 매일 아동 열 명이 마찬가지로 마취제 없이 팔다리 절단 수술을 받는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구호품을 가지러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는 청소년들에게 폭탄이 투하된다.
이스라엘 출신의 홀로코스트 역사가인 라즈 시걸은 공격이 시작되고 며칠 뒤에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집단 학살(genocide)의 교과서적 사례”라며 이스라엘을 성토했다. 그렇다, 집단 학살 외에 다른 규정은 불가능해 보인다. 집단 학살의 적나라한 특징 하나는 민간인, 특히 어린이 사망자 수다. 가자 지구 총 사망자의 43퍼센트인 13,000여 명이 어린이다. 공격 개시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유니세프는 이미 “가자 지구는 아동 수천
명에게는 무덤이, 남은 모든 이에게는 산지옥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하늘에서 찍은 가자 지구 사진에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시시각각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소식에 말문이 막힌 우리는 남겨진 말도 거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가자 지구가 완전히 파괴된 것이 아니듯 팔레스타인 안팎에서 이 참상을 알리려는 목소리들이 힘껏 외침을 토해 내고 있다. 나아가 즉각적인 경악과 분노를 넘어 이번 학살의 원인과 경과를 분석하고 식민 지배를 종식할 방안을 제시하려는 시도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질베르 아슈카르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원하는가? 전쟁 중단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참혹한 학살 전쟁을 왜 멈추지 않는가?
지은이 질베르 아슈카르는 레바논 출신의 좌파 지식인이다. 발전 문제와 국제 관계 전문가인 그는 2010년대 초의 ‘아랍의 봄’을 비롯해 중동의 지정학적 현실을 반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연구해 왔고,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주기적인 전쟁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이전의 관찰과 사태의 추이에 기초해 그는 이번 학살 전쟁 초기부터 정세를 분석하고 향후의 전개를 예측하는 글을 각종 지면에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그가 2023년 12월까지 블로그와 여타 지면에 쓴 짧은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글들을 통해 아슈카르는 이스라엘의 맹공이 왜 현재와 같은 양상을 취했는지,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지를 알리고자 한다. 실시간으로 작성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사태의 원인과 전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그가 이 책에서 예견한 것들이 거의 그대로 실현되기도 했다. 번역은 한국에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고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s) 운동에 힘써 온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가 맡았다. 이 학살을 속히 막아야 한다는 긴급함과 절박함 속에서 이번 전쟁에 대한 시각과 통찰을 길러 주는 작업을 국내에 소개할 강한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다섯 달 동안 쉴 새 없이 가자 지구를 공격하고 주민을 살해하거나 쫓아냈다. 현 상황의 심각함은 1947년 건국 직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몰살하고 강제 추방한 ‘나크바’(대재앙)를 능가하며, 2차 대전의 원자 폭탄 투하나 1994년의 르완다 학살처럼 인류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사례에 비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스라엘은 이토록 참혹한 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며 왜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가?
아슈카르는 현재 이스라엘의 집권 세력이 그 어느 때보다 극우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48년 나크바 때 가장 악명 높았던 수정주의적 시온주의 집단을 계승한 이들은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을 완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를 필두로 ‘네오 나치’라 불리는 인물이 상당수 포진한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반격을 빌미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기획에 착수했다.
공격 초반에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북구를 표적으로 삼고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이런 야욕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주민들을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최남단에 몰아넣는 동시에 이집트에 난민 수용 압력을 가해 이들을 시나이 반도로 쫓아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각본인 것이다. 아슈카르는 공격 초기부터 이 각본을 예견했다. 그리고 2024년 2월 이스라엘은 스스로 ‘안전 지대’라 불렀던 남부의 라파주에 대규모 공습을 실시했고, 이어 이집트가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런 상황은 아슈카르의 예견이 사실임을 입증하면서 이스라엘이 원하는 바가 ‘2차 나크바’임을 뚜렷이 드러낸다.
아슈카르는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10월 7일 반격이 이스라엘의 오만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반격이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주된 근거는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아랍 나라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저항 세력이 감행한 반격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는 대신 이스라엘 극우에 대이스라엘 기획을 실행할 구실을 제공했다. 이스라엘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 폭격을 개시했고 전 세계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끝을 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아슈카르는 군사적인 대응으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할 수 있다는 발상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더한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일관되게 지지하는 저항 방식은 1988년의 1차 인티파다 때 팔레스타인 민중이 보여 준 비폭력 대중 항쟁이다. 이 방법 외에는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우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서양은 물론이고 전 세계 대중이 항의에 나서 이스라엘이 학살을 멈추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하게 제안한다. 이를 통해 도덕적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 평화를 위한 싸움이 터져 나와야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결합되어야 하며 그럴 수밖에 없음을 그는 강조한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스라엘의 공격에 일부 나라가 집단 학살을 규탄하고 나섰고 2024년 1월 26일에는 국제 사법 재판소가 이스라엘에 집단 학살을 방지하라는 임시 조치 명령을 내렸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초기부터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지원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며 재갈을 물렸다. 학살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스라엘을 온전히 지지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적극적으로 제재 조치에 들어간 나라는 극히 드물며, 무엇보다 미국 정부는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강대국들의 공모 혹은 미온적인 반응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은 가자 남부인 라파주에 계속 폭격을 쏟아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안 지구에서도 억압을 강화했으며, 가자 지구 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남부에 공격을 가함으로써 확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부의 예상과 달리 이번 학살 전쟁은 이스라엘이 주기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자행한 공격과는 차원을 달리하며 팔레스타인 역사상 가장 끔찍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여파는 중동과 세계 전역까지 퍼질 것이다.
미국의 지식인이자 운동가인 앤절라 데이비스는 “팔레스타인은 우리 시대의 남아프리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전 세계 사회 운동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철폐를 부르짖었고, 남아프리카와의 연대는 이 운동들의 의미를 재는 척도로 기능했다. 마찬가지로 이 처참한 파괴와 살해의 광기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한다면 정의와 평화라는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팬데믹이 미친 파장과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한층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 관계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증오와 혐오가 우리를 잠식한 지 오래다. 이스라엘 사회의 극우화와 학살 전쟁은 이 증오가 극단화된 사례다. 세계 그 어느 지역도 이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되지 않는 한 우리 역시 해방될 수 없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이스라엘의 학살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이 믿기 어려운 참상에서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의, 따라서 우리의 해방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그 발걸음을 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
질베르 아슈카르
세네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다.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사회사와 국제 관계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베이루트와 베를린, 파리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다 2007년부터 SOAS 런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발전 문제와 국제 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야만의 충돌: 새로운 세계 무질서의 형성』(2002), 『아랍인과 홀로코스트: 아랍과 이스라엘의 서사 전쟁』(2010), 『마르크스주의, 오리엔탈리즘, 코즈모폴리터니즘』(2013), 『인민이 원한다: 아랍 봉기의 급진적 모험』(2013), 『병적 징후들: 다시 발발한 아랍 봉기』(2016), 『새로운 냉전: 코소보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2023) 등이 있다. 한국에는 놈 촘스키와의 대담집인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강주헌 옮김, 사계절, 2009)가 번역되어 있다. 최근에는 웹사이트(https://gilbert-achcar.net/)와 각종 매체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중심으로 정세를 분석하고 개입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옮긴이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정의와 해방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투쟁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다”
“금세기 어떤 전쟁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자행하는 절멸 캠페인에 근접조차 하지 않는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은 75년간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파괴해 온 이스라엘에 반격을 개시했다. 그 직후 시작된 이스라엘의 보복은 다섯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몇 달간 계속된 공격으로 가자 주민 230만여 명 중 30,000여 명이 사망했고 70,000여 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150만여 명이 이집트 국경에 인접한 지역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금세기 어떤 전쟁도 비교될 수 없는 규모와 강도로 대형 폭탄을 수없이 쏟아부었고, 집, 병원, 학교, 기반 시설, 종교 기관, 문화 유적지를 가리지 않고 민간인 거주 지역의 건물 70퍼센트를 파괴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수치일 뿐이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공격 초기부터 공언한 대로 가자 지구를 완전히 제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가 공격 초기에 선언했듯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로 취급하며 법과 상식을 노골적으로 어기는 중이다. 피난처인 유엔 학교와 병원, 종교 시설을 폭격하고 구호품 반입을 차단하고 있다. 북부 가자 주민 70만 명은 동물 사료로 연명 중이며, 동물 사료를 소화할 수 없는 아이들이 그로 인해 사망한다. 가자 주민은 물론이고 기자, 의료진, 유엔 직원도 표적 살해하고 있다. 강제 대피령을 내린 뒤 피난 행렬을 폭격했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감옥으로 끌고 가 고문했다. 산모는 마취제 없이 병원 바닥에서 제왕 절개 수술을 받고 신생아는 추위와 영양 부족, 감염으로 생후 며칠 만에 죽는다. 매일 아동 열 명이 마찬가지로 마취제 없이 팔다리 절단 수술을 받는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구호품을 가지러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는 청소년들에게 폭탄이 투하된다.
이스라엘 출신의 홀로코스트 역사가인 라즈 시걸은 공격이 시작되고 며칠 뒤에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집단 학살(genocide)의 교과서적 사례”라며 이스라엘을 성토했다. 그렇다, 집단 학살 외에 다른 규정은 불가능해 보인다. 집단 학살의 적나라한 특징 하나는 민간인, 특히 어린이 사망자 수다. 가자 지구 총 사망자의 43퍼센트인 13,000여 명이 어린이다. 공격 개시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유니세프는 이미 “가자 지구는 아동 수천
명에게는 무덤이, 남은 모든 이에게는 산지옥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하늘에서 찍은 가자 지구 사진에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시시각각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소식에 말문이 막힌 우리는 남겨진 말도 거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가자 지구가 완전히 파괴된 것이 아니듯 팔레스타인 안팎에서 이 참상을 알리려는 목소리들이 힘껏 외침을 토해 내고 있다. 나아가 즉각적인 경악과 분노를 넘어 이번 학살의 원인과 경과를 분석하고 식민 지배를 종식할 방안을 제시하려는 시도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질베르 아슈카르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원하는가? 전쟁 중단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참혹한 학살 전쟁을 왜 멈추지 않는가?
지은이 질베르 아슈카르는 레바논 출신의 좌파 지식인이다. 발전 문제와 국제 관계 전문가인 그는 2010년대 초의 ‘아랍의 봄’을 비롯해 중동의 지정학적 현실을 반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연구해 왔고,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주기적인 전쟁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이전의 관찰과 사태의 추이에 기초해 그는 이번 학살 전쟁 초기부터 정세를 분석하고 향후의 전개를 예측하는 글을 각종 지면에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그가 2023년 12월까지 블로그와 여타 지면에 쓴 짧은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글들을 통해 아슈카르는 이스라엘의 맹공이 왜 현재와 같은 양상을 취했는지,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지를 알리고자 한다. 실시간으로 작성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사태의 원인과 전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그가 이 책에서 예견한 것들이 거의 그대로 실현되기도 했다. 번역은 한국에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고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s) 운동에 힘써 온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가 맡았다. 이 학살을 속히 막아야 한다는 긴급함과 절박함 속에서 이번 전쟁에 대한 시각과 통찰을 길러 주는 작업을 국내에 소개할 강한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다섯 달 동안 쉴 새 없이 가자 지구를 공격하고 주민을 살해하거나 쫓아냈다. 현 상황의 심각함은 1947년 건국 직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몰살하고 강제 추방한 ‘나크바’(대재앙)를 능가하며, 2차 대전의 원자 폭탄 투하나 1994년의 르완다 학살처럼 인류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사례에 비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스라엘은 이토록 참혹한 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며 왜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가?
아슈카르는 현재 이스라엘의 집권 세력이 그 어느 때보다 극우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48년 나크바 때 가장 악명 높았던 수정주의적 시온주의 집단을 계승한 이들은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을 완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를 필두로 ‘네오 나치’라 불리는 인물이 상당수 포진한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반격을 빌미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기획에 착수했다.
공격 초반에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북구를 표적으로 삼고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이런 야욕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주민들을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최남단에 몰아넣는 동시에 이집트에 난민 수용 압력을 가해 이들을 시나이 반도로 쫓아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각본인 것이다. 아슈카르는 공격 초기부터 이 각본을 예견했다. 그리고 2024년 2월 이스라엘은 스스로 ‘안전 지대’라 불렀던 남부의 라파주에 대규모 공습을 실시했고, 이어 이집트가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런 상황은 아슈카르의 예견이 사실임을 입증하면서 이스라엘이 원하는 바가 ‘2차 나크바’임을 뚜렷이 드러낸다.
아슈카르는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10월 7일 반격이 이스라엘의 오만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반격이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주된 근거는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아랍 나라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저항 세력이 감행한 반격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는 대신 이스라엘 극우에 대이스라엘 기획을 실행할 구실을 제공했다. 이스라엘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 폭격을 개시했고 전 세계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끝을 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아슈카르는 군사적인 대응으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할 수 있다는 발상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더한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일관되게 지지하는 저항 방식은 1988년의 1차 인티파다 때 팔레스타인 민중이 보여 준 비폭력 대중 항쟁이다. 이 방법 외에는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우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서양은 물론이고 전 세계 대중이 항의에 나서 이스라엘이 학살을 멈추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하게 제안한다. 이를 통해 도덕적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 평화를 위한 싸움이 터져 나와야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결합되어야 하며 그럴 수밖에 없음을 그는 강조한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스라엘의 공격에 일부 나라가 집단 학살을 규탄하고 나섰고 2024년 1월 26일에는 국제 사법 재판소가 이스라엘에 집단 학살을 방지하라는 임시 조치 명령을 내렸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초기부터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지원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몰아가며 재갈을 물렸다. 학살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스라엘을 온전히 지지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적극적으로 제재 조치에 들어간 나라는 극히 드물며, 무엇보다 미국 정부는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강대국들의 공모 혹은 미온적인 반응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은 가자 남부인 라파주에 계속 폭격을 쏟아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안 지구에서도 억압을 강화했으며, 가자 지구 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남부에 공격을 가함으로써 확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부의 예상과 달리 이번 학살 전쟁은 이스라엘이 주기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자행한 공격과는 차원을 달리하며 팔레스타인 역사상 가장 끔찍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여파는 중동과 세계 전역까지 퍼질 것이다.
미국의 지식인이자 운동가인 앤절라 데이비스는 “팔레스타인은 우리 시대의 남아프리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전 세계 사회 운동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철폐를 부르짖었고, 남아프리카와의 연대는 이 운동들의 의미를 재는 척도로 기능했다. 마찬가지로 이 처참한 파괴와 살해의 광기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한다면 정의와 평화라는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팬데믹이 미친 파장과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한층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 관계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증오와 혐오가 우리를 잠식한 지 오래다. 이스라엘 사회의 극우화와 학살 전쟁은 이 증오가 극단화된 사례다. 세계 그 어느 지역도 이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되지 않는 한 우리 역시 해방될 수 없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이스라엘의 학살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이 믿기 어려운 참상에서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의, 따라서 우리의 해방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그 발걸음을 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
질베르 아슈카르
세네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다.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사회사와 국제 관계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베이루트와 베를린, 파리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다 2007년부터 SOAS 런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발전 문제와 국제 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야만의 충돌: 새로운 세계 무질서의 형성』(2002), 『아랍인과 홀로코스트: 아랍과 이스라엘의 서사 전쟁』(2010), 『마르크스주의, 오리엔탈리즘, 코즈모폴리터니즘』(2013), 『인민이 원한다: 아랍 봉기의 급진적 모험』(2013), 『병적 징후들: 다시 발발한 아랍 봉기』(2016), 『새로운 냉전: 코소보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2023) 등이 있다. 한국에는 놈 촘스키와의 대담집인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강주헌 옮김, 사계절, 2009)가 번역되어 있다. 최근에는 웹사이트(https://gilbert-achcar.net/)와 각종 매체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중심으로 정세를 분석하고 개입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옮긴이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