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지은이)
이나라 (옮긴이)
만일 발행
기존 서양미술사의 틀을 깨고 '이미지'에 관한 초학제적 이론을 정립하고 있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저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존더코만도’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의 감독 라슬로 네메시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의 형식을 취한 영화비평문이다. 저자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쇼아’를 다루고 있는지, 그 미학 적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규명한다. 나아가 이미지가 어떻게 역사를 증언하는지, 즉 ‘재현의 윤리학’와 ‘재현의 미학’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한다.
책 속에서
P. 7
당신의 영화 <사울의 아들>은 하나의 괴물입니다. 불가결한 괴물, 일관된 괴물, 이롭고도 고결한 괴물이에요. 지극히 위험한 미적, 서사적 도박의 결과물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매번 “픽션”이라는 이름 아래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발견하는 이야기들과 견줄 때 1944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의 울타리 안 나치의 처형 기계, 진정 베헤모스를 다루는 한 편의 영화가 괴물이 아닐 방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의 영화는 픽션이 아닌 다른 무엇일까요? 당연히도 픽션입니다. 당신의 픽션은 굉장히 특수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뒤쫓습니다.
P. 53
<사울의 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그러나 이미 죽은 아이입니다?한 사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사내가 [아이의] 시신 앞에서 “이것을 가르시오”라는 나치 친위대 소속 의사가 내리는 명령을 들었을 때, 사내의 온 존재가 뒤집어집니다. 그러니까 죽은 아이를 해부학적 조각으로 만드는 일에서 빼내려는 시도, 아이가 소각장 화로의 끔찍한 구멍에 들어가거나, 익명의 재가 되어 비스와 강에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가 사울에게는 어둠에서 벗어나는 일일 거예요.
P. 69
지옥의 비르케나우 캠프 속에서 한 죽은 아이를 어둠에서 끄집어내기 위한 사울의 끝없는 여정, 어마어마하면서도 동시에 제약으로 가득한 이 여정은 이런 의미에서 제게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신화 속 지옥을 여행하는 오르페우스의 행동을 떠올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블랑쇼는 이를 다음과 같이 너무나 훌륭하게 묘사했어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향해 내려갔다면 예술은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하는 권능이다.” 그러니 작품을 만드는 일은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밤이 우리를 다만 가두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어둠에서 벗어나기”라는 방법, 특히 시적인 방법이란 이러한 것입니다.
P. 83
당신은 인상적이라고 할 만한 기록 조사 작업을 하고서도 아우슈비츠 존더코만도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우 낡고도 모던한, 문학적 전통의 논리를 이용하여 참된 영화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이미지와 역사에 관해 매우 심원하게 숙고하던 발터 벤야민이 그토록 매달렸던 주요한 패러다임 중 두 가지를 한데 모아 “다큐멘터리적 이야기”라는 장르의 영화를 발명했던 것입니까?
저자소개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Georges Didi-Huberman) (지은이)
철학, 정신분석학, 인류학, 미술사, 사진 및 영화 등 다양한 학제의 연구 성과를 가로질러 이미지에 관한 초학제적 이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이미지-몽타주의 사유 이론을 개진하는 미술사학자이며 철학자일 뿐 아니라 자코메티, 시몬 앙타이, 장뤼크 고다르, 파솔리니, 하룬 파로키,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 등의 작품을 다루는 비평적 해석가다. 니체의 계보학, 프로이트의 형상성이 디디-위베르만의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르주 바타유의 ‘도큐멍’(documents),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스’를 관통하는 시각적 사유 역시 디디-위베르만의 연구와 실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1982년 히스테리 환자들의 사진에 대한 도상학적 연구서를 쓴 이후 쉰 편이 넘는 저작을 펴냈다. 예술사의 주제와 방법론에 도전하는 『이미지 앞에서』(1990), 『프라 안젤리코: 비유사성과 형상화』(1990), 『우리가 보는 것, 우리를 응시하는 것』(1992), 『잔존하는 이미지』(2002) 등을 비롯하여 역사 이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2003), 『반딧불의 잔존』(2009)을 펴낸 후 2009년에서 2016년 사이에는 ‘역사의 눈’이라 이름 붙인 6권의 시리즈에서 브레히트, 하룬 파로키, 고다르, 에이젠시테인 등을 다루었다.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프레누와, 팔레 드 도쿄, 주 드 폼므 등에서 «아틀라스», «자국», «장소의 우화», «새로운 유령들의 역사», «봉기»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5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이나라
이미지 문화 연구자. 동의대 영화 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전임연구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벤야민의 이미지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툴루즈2대학 고등시청각학교ESAV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파리 팡테옹 소르본대학에서 현대영화 영상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 무빙 이미지에 대한 동시대의 미학 이론을 연구하고, 영화사, 인류학적 이미지 및 동시대 이미지 작업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를 시도한다.<민중과 민중(들)의 이미지 : 디디 위베르만의 이미지론에서 민중의 문제>, <픽션의 작업: 랑시에르의 예술의 정치>,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독립) 여성으로 다시 쓰기>, <아녜스 바르다의 목소리>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폐허의 시간>,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앤솔로지 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유럽영화운동>, <풍경의 감각> 등이 있고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어둠에서 벗어나기』, 『색채 속을 걷는 사람』을 옮겼으며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다수 저작을 한국어로 번역 중이다.
기존 서양미술사의 틀을 깨고 '이미지'에 관한 초학제적 이론을 정립하고 있는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저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존더코만도’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의 감독 라슬로 네메시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의 형식을 취한 영화비평문이다. 저자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쇼아’를 다루고 있는지, 그 미학 적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규명한다. 나아가 이미지가 어떻게 역사를 증언하는지, 즉 ‘재현의 윤리학’와 ‘재현의 미학’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한다.
책 속에서
P. 7
당신의 영화 <사울의 아들>은 하나의 괴물입니다. 불가결한 괴물, 일관된 괴물, 이롭고도 고결한 괴물이에요. 지극히 위험한 미적, 서사적 도박의 결과물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매번 “픽션”이라는 이름 아래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발견하는 이야기들과 견줄 때 1944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의 울타리 안 나치의 처형 기계, 진정 베헤모스를 다루는 한 편의 영화가 괴물이 아닐 방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의 영화는 픽션이 아닌 다른 무엇일까요? 당연히도 픽션입니다. 당신의 픽션은 굉장히 특수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뒤쫓습니다.
P. 53
<사울의 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그러나 이미 죽은 아이입니다?한 사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사내가 [아이의] 시신 앞에서 “이것을 가르시오”라는 나치 친위대 소속 의사가 내리는 명령을 들었을 때, 사내의 온 존재가 뒤집어집니다. 그러니까 죽은 아이를 해부학적 조각으로 만드는 일에서 빼내려는 시도, 아이가 소각장 화로의 끔찍한 구멍에 들어가거나, 익명의 재가 되어 비스와 강에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가 사울에게는 어둠에서 벗어나는 일일 거예요.
P. 69
지옥의 비르케나우 캠프 속에서 한 죽은 아이를 어둠에서 끄집어내기 위한 사울의 끝없는 여정, 어마어마하면서도 동시에 제약으로 가득한 이 여정은 이런 의미에서 제게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신화 속 지옥을 여행하는 오르페우스의 행동을 떠올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블랑쇼는 이를 다음과 같이 너무나 훌륭하게 묘사했어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향해 내려갔다면 예술은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하는 권능이다.” 그러니 작품을 만드는 일은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밤이 우리를 다만 가두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밤이 스스로를 개방하도록 “어둠에서 벗어나기”라는 방법, 특히 시적인 방법이란 이러한 것입니다.
P. 83
당신은 인상적이라고 할 만한 기록 조사 작업을 하고서도 아우슈비츠 존더코만도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우 낡고도 모던한, 문학적 전통의 논리를 이용하여 참된 영화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이미지와 역사에 관해 매우 심원하게 숙고하던 발터 벤야민이 그토록 매달렸던 주요한 패러다임 중 두 가지를 한데 모아 “다큐멘터리적 이야기”라는 장르의 영화를 발명했던 것입니까?
저자소개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Georges Didi-Huberman) (지은이)
철학, 정신분석학, 인류학, 미술사, 사진 및 영화 등 다양한 학제의 연구 성과를 가로질러 이미지에 관한 초학제적 이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이미지-몽타주의 사유 이론을 개진하는 미술사학자이며 철학자일 뿐 아니라 자코메티, 시몬 앙타이, 장뤼크 고다르, 파솔리니, 하룬 파로키,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 등의 작품을 다루는 비평적 해석가다. 니체의 계보학, 프로이트의 형상성이 디디-위베르만의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르주 바타유의 ‘도큐멍’(documents),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스’를 관통하는 시각적 사유 역시 디디-위베르만의 연구와 실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1982년 히스테리 환자들의 사진에 대한 도상학적 연구서를 쓴 이후 쉰 편이 넘는 저작을 펴냈다. 예술사의 주제와 방법론에 도전하는 『이미지 앞에서』(1990), 『프라 안젤리코: 비유사성과 형상화』(1990), 『우리가 보는 것, 우리를 응시하는 것』(1992), 『잔존하는 이미지』(2002) 등을 비롯하여 역사 이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2003), 『반딧불의 잔존』(2009)을 펴낸 후 2009년에서 2016년 사이에는 ‘역사의 눈’이라 이름 붙인 6권의 시리즈에서 브레히트, 하룬 파로키, 고다르, 에이젠시테인 등을 다루었다.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프레누와, 팔레 드 도쿄, 주 드 폼므 등에서 «아틀라스», «자국», «장소의 우화», «새로운 유령들의 역사», «봉기»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5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이나라
이미지 문화 연구자. 동의대 영화 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전임연구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벤야민의 이미지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툴루즈2대학 고등시청각학교ESAV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파리 팡테옹 소르본대학에서 현대영화 영상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 무빙 이미지에 대한 동시대의 미학 이론을 연구하고, 영화사, 인류학적 이미지 및 동시대 이미지 작업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를 시도한다.<민중과 민중(들)의 이미지 : 디디 위베르만의 이미지론에서 민중의 문제>, <픽션의 작업: 랑시에르의 예술의 정치>,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독립) 여성으로 다시 쓰기>, <아녜스 바르다의 목소리>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폐허의 시간>,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앤솔로지 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유럽영화운동>, <풍경의 감각> 등이 있고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어둠에서 벗어나기』, 『색채 속을 걷는 사람』을 옮겼으며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다수 저작을 한국어로 번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