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저자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북해에서의 항해』, 『비정형』, 『현대 조각의 흐름』,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등의 번역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저명한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다. 『언더 블루 컵』은 동맥류 파열로 뇌가 손상되어 세 번의 수술과 지난한 인지 재활 훈련을 통해 회복된 후 보다 전투적인 어조로 포스트미디엄 조건의 미학적 무의미함에 맞서 열정적으로 투쟁을 벌이는 비평 이론서다.
저자는 1999년에 뇌에 거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뇌동맥류 파열을 겪었다. 이로 인해 저자는 세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씻겨 나가 언어도 기억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만다.
저자가 뇌졸중을 겪기 2년 전인 1997년은 유명한 카셀도쿠멘타 X가 열린 해이기도 하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때부터 포스트미디엄의 설치미술은 정점을 향해 가는 듯이 보였으며, 카셀도쿠멘타가 ‘화이트 큐브는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선보인 다양한 예술적 실천은 예술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기반을 송두리째 휩쓸어버렸다. 망각은 포스트미디엄 예술의 특징적인 양상으로, 여기에는 설치미술을 비롯해 관계미학, 안티 화이트 큐브 미학, 개념미술, 자아에 대한 해체주의의 비판, 독해의 즐거움을 죽이는 정치적 도덕주의 등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저가의 씻겨나간 기억을 회복하는 데 사용된 치료법은 매체, 물질성, 시간과 자아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를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그녀의 언어 회복은 자신에 대한 기억, 즉 자신이 의미 있는 세계를 구축한 ‘나(너)는 누구인가’라는 발판을 회복한 후에만 가능했다. ‘나(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정확히 현대미술이 포기한 발판으로, 포스트미디엄의 조건은 매체가 예술의 가능성 자체를 뒷받침하는 관건임을 망각한 상황이라고 크라우스는 주장한다.
‘언더 블루 컵’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인지 재활 훈련에서 사용된 암기 카드의 하나였다. 암기 카드는 단순한 그림이나 아무런 연관 없는 단어 조각들을 담고 있는데, ‘언더 블루 컵’이라는 카드는 저자가 인지 재활 훈련에서 첫 번째로 마주하게 된 예시 단어였다. 기억 상실은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홀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도 같다. 저자는 무의식 어딘가에 남겨진 삶의 편린, 혹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삶의 내력을 서서히 복구하면서 마침내 ‘언더 블루 컵’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언더 블루 컵’은 “기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연습 대상이자 사라진 기억에 전해진 우연한 선물”로, 그녀의 기억 회복에 필수적인 매체였다.
『언더 블루 컵』은 손상된 기억을 회복하려는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언뜻 일화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회고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론과 역사, 개인적 서사가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얽혀 있는 이 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매체 이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이전부터 ‘포스트미디엄 조건’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연구해온 바 있으며, 『북해에서의 항해』에서도 흔히 개념미술가로 알려져 있는 마르셀 브로타스가 사실은 매체를 탐구하는 중요한 작가임을 입증한 바 있다.
크라우스는 뇌졸중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글쓰기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삶과 예술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발판 혹은 기반이 무엇인지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이 책은 글쓰기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어디에서도 안전한 닻을 찾을 수 없기에 결코 선형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저자는 디킨스를 자주 소환하는바 플롯의 대가였던 디킨스에게서 발견되는 텍스트적 즐거움 혹은 바르트가 말하는 텍스트적 즐거움, 그리고 수전 손태그가 말한 예술의 에로티시즘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텍스트적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독특한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푸가를 변주할 수 있는 자유의 규칙처럼, 알파벳 구조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아포리즘은 독특한 악센트를 띤 파편의 수사법을 담고 있어 앞뒤 문맥에 대한 독해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언더 블루 컵』에는 60여 장이 넘는 컬러 화보가 실려 있다. 보는 즐거움 역시 이 책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저자소개
미술비평가 및 미술사가. 컬럼비아대학교 ‘유니버시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76년에 동시대 미술비평 및 이론 저널인 《옥토버(October)》를 공동으로 창간했으며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현대 조각의 흐름(Passages in Modern Sculpture)』(1977), 『아방가르드의 독창성과 다른 모더니즘 신화들(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1985), 『광적인 사랑(L'Amour fou)』(1986), 『사진(Le Photographique)』(1990), 『시각적 무의식(The Optical Unconscious)』(1993), 『북해에서의 항해(A Voyage on the North Sea)』(1999), 『총각들(Bachelors)』(2000), 『영구적인 재고 목록(Perpetual Inventory)』(2010), 『언더 블루 컵(Under Blue Cup)』(2011) 등의 저서가 있다.
책소개
저자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북해에서의 항해』, 『비정형』, 『현대 조각의 흐름』,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등의 번역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저명한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다. 『언더 블루 컵』은 동맥류 파열로 뇌가 손상되어 세 번의 수술과 지난한 인지 재활 훈련을 통해 회복된 후 보다 전투적인 어조로 포스트미디엄 조건의 미학적 무의미함에 맞서 열정적으로 투쟁을 벌이는 비평 이론서다.
저자는 1999년에 뇌에 거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뇌동맥류 파열을 겪었다. 이로 인해 저자는 세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씻겨 나가 언어도 기억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만다.
저자가 뇌졸중을 겪기 2년 전인 1997년은 유명한 카셀도쿠멘타 X가 열린 해이기도 하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때부터 포스트미디엄의 설치미술은 정점을 향해 가는 듯이 보였으며, 카셀도쿠멘타가 ‘화이트 큐브는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선보인 다양한 예술적 실천은 예술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기반을 송두리째 휩쓸어버렸다. 망각은 포스트미디엄 예술의 특징적인 양상으로, 여기에는 설치미술을 비롯해 관계미학, 안티 화이트 큐브 미학, 개념미술, 자아에 대한 해체주의의 비판, 독해의 즐거움을 죽이는 정치적 도덕주의 등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저가의 씻겨나간 기억을 회복하는 데 사용된 치료법은 매체, 물질성, 시간과 자아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를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그녀의 언어 회복은 자신에 대한 기억, 즉 자신이 의미 있는 세계를 구축한 ‘나(너)는 누구인가’라는 발판을 회복한 후에만 가능했다. ‘나(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정확히 현대미술이 포기한 발판으로, 포스트미디엄의 조건은 매체가 예술의 가능성 자체를 뒷받침하는 관건임을 망각한 상황이라고 크라우스는 주장한다.
‘언더 블루 컵’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인지 재활 훈련에서 사용된 암기 카드의 하나였다. 암기 카드는 단순한 그림이나 아무런 연관 없는 단어 조각들을 담고 있는데, ‘언더 블루 컵’이라는 카드는 저자가 인지 재활 훈련에서 첫 번째로 마주하게 된 예시 단어였다. 기억 상실은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홀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도 같다. 저자는 무의식 어딘가에 남겨진 삶의 편린, 혹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삶의 내력을 서서히 복구하면서 마침내 ‘언더 블루 컵’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언더 블루 컵’은 “기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연습 대상이자 사라진 기억에 전해진 우연한 선물”로, 그녀의 기억 회복에 필수적인 매체였다.
『언더 블루 컵』은 손상된 기억을 회복하려는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언뜻 일화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회고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론과 역사, 개인적 서사가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얽혀 있는 이 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매체 이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이전부터 ‘포스트미디엄 조건’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연구해온 바 있으며, 『북해에서의 항해』에서도 흔히 개념미술가로 알려져 있는 마르셀 브로타스가 사실은 매체를 탐구하는 중요한 작가임을 입증한 바 있다.
크라우스는 뇌졸중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글쓰기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삶과 예술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발판 혹은 기반이 무엇인지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이 책은 글쓰기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어디에서도 안전한 닻을 찾을 수 없기에 결코 선형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저자는 디킨스를 자주 소환하는바 플롯의 대가였던 디킨스에게서 발견되는 텍스트적 즐거움 혹은 바르트가 말하는 텍스트적 즐거움, 그리고 수전 손태그가 말한 예술의 에로티시즘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텍스트적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독특한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푸가를 변주할 수 있는 자유의 규칙처럼, 알파벳 구조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아포리즘은 독특한 악센트를 띤 파편의 수사법을 담고 있어 앞뒤 문맥에 대한 독해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언더 블루 컵』에는 60여 장이 넘는 컬러 화보가 실려 있다. 보는 즐거움 역시 이 책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저자소개
미술비평가 및 미술사가. 컬럼비아대학교 ‘유니버시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76년에 동시대 미술비평 및 이론 저널인 《옥토버(October)》를 공동으로 창간했으며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현대 조각의 흐름(Passages in Modern Sculpture)』(1977), 『아방가르드의 독창성과 다른 모더니즘 신화들(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1985), 『광적인 사랑(L'Amour fou)』(1986), 『사진(Le Photographique)』(1990), 『시각적 무의식(The Optical Unconscious)』(1993), 『북해에서의 항해(A Voyage on the North Sea)』(1999), 『총각들(Bachelors)』(2000), 『영구적인 재고 목록(Perpetual Inventory)』(2010), 『언더 블루 컵(Under Blue Cup)』(2011)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