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시 R. 리파드 (지은이)
윤형민 (옮긴이)
현실문화A
2023-11-15
책소개
50년 만에 국내 첫 번역 출간
1966년부터 1972년까지 6년간의 개념미술사를 담은 참고문헌
이 책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6년 동안 개념미술과 관련해 행해진 주요 사건들을 모은 일종의 ‘참고문헌’이다. 각 해에 열린 전시와 행사, 발표된 작품과 글, 전시 도록, 인터뷰 등을 참고문헌 형태로 나열하면서, 지은이가 해당 작가나 언급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필요한 만큼 설명과 코멘트를 남겨놓은 형식이다.
이 책의 성격을 명확히 알려주는 지표는 바로 표지 제목이다. “6년: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오브제 작품의 비물질화: 일부 미학적 경계의 정보에 대한 상호참조 도서: 단편화된 텍스트, 예술 작품, 기록, 인터뷰 및 심포지엄이 삽입된 참고문헌으로 구성되며, 연대순으로 나열하고 이른바 개념 또는 정보 또는 아이디어 미술에 중점을 두어, 현재 미대륙, 유럽,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미니멀, 반형태, 시스템, 대지 또는 과정미술과 같은 모호하게 정의된 분야에 대해 (종종 정치적인 의미를 함축하며) 언급한 것으로, 루시 R. 리파드가 편집하고 주석을 달았다.”
한눈에 읽기에 무척이나 어지러운 긴 제목이지만, 지은이가 하려는 말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그 형식과 형태만으로도 ‘개념미술’을 느끼게 해준다. 지은이는 개념미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개념미술이란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고 물질적 형식은 부차적이고, 싸고, 가볍고, 가식이 없거나, ‘비물질화’된 작품을 의미한다.”(8쪽) 이 책 역시 ‘제목’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치고, 가식 없이 아이디어를 밀어붙이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가장 객관적면서 가장 개인적인 연대기
이 책의 성격을 설명하려 할 때 지은이에 대한 설명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루시 리파드는 직접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는 아니지만, 이 시기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개념미술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던 비평가 혹은 증인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었는지, 누가 시작했는지, 누가 무엇을 했고, 어떤 목표와 철학, 정치적 의미가 있었는지,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을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나는 거기에 있었으나 내 기억을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권위적인 개관은 더욱 믿지 못한다. 따라서 뒤늦게 깨닫는 바에서 얻는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그 당시에 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 자신을 많이 인용할 것이다.”(8쪽)
힙합식으로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스웩’이다. 하지만 본문에 담긴 저자 주석과 인터뷰 등을 읽다 보면 이것이 허세만은 아님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비평가이자 큐레이터로서 현장에서 직접 흐름을 느끼고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해 숙고한 후에야 나올 수 있는 그러한 주관적인 언급들이 개념미술과 그 작가에 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한다. 6년간의 개념미술사를 정리한 참고문헌이라는 가장 객관적인 형식 안에 가장 개인적인 기록을 함께 담은 이 묵직한 연대기는, 그러므로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미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물구나무를 서서 미술을 바라보기
뒤샹의 변기 외에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미술 사례라면 1960년 백남준이 공연 중에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퍼포먼스가 있다. 이 책에도 꽤 독특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여러 사람이 한 장씩 찢어 씹은 후 그 종이들을 모아 발효시키는가 하면(58쪽, 존 래섬, 〈예술과 문화〉), 날마다 자신이 만난 사람과 간 곳을 기록해 작품으로 발표하고(113쪽, 온 가와라), 물구나무서기가 작품이 되고(144쪽, 로버트 킨몬트), 무작위로 사람을 택해 미행하고(225쪽, 비토 아콘치, 〈미행 작업〉), 대통령에게 ‘당신이 죽인 것을 먹으’라고 편지를 보낸다(424쪽, 게릴라 아트 액션 그룹).
이런 내용들을 읽다 보면 독자로서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예술이라고?’ 그러나 이 책에 괴짜들의 기행만이 담긴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런 기행에도 목적이 있다. 특히 작가들의 인터뷰와 대담에서는 형태와 주류적인 매체, 물질, 원본성 등 다양한 것들에 반기를 들고 물구나무를 서서 보려는 예술가들의 고민을 파편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물론 ‘개념미술이 무엇인가’
지은이는 후기에서 ‘작가들이 자신의 능력과 재정적인 수단 이상의 구조적인 기술과 씨름하는 대신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기술적인 개념을 다루는 게 가능해졌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가들은 보통 자의적으로 미술이라는 구역 안에 갇혀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마도 이것이 개념미술, 혹은 예술이 오랜 시간 동안 추구해온 새로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 독특하고 놀라운 사건들의 목록을 다시 읽고 개념미술의 태동과 여러 활동, 그 이유와 배경을 확인함으로써 다시 식상해진 예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루시 리파드
1937년 미국 뉴욕 출생의 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액티비스트.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50회 이상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현대미술, 페미니즘, 정치, 장소 등에 대한 다수의 글과 20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했다. 1969년 정치적 예술가 그룹인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 AWC)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76년 여성의 예술 및 정치에 주목하는 작가들과 함께 헤러시스 콜렉티브(Heresies Collective)를 결성했고, 같은 해 뉴욕에서 예술 전문 출판 대안공간인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6년: 1966년부터 1972년 사이 미술 오브제의 비물질화(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1973), 『중심에서: 여성의 미술에 대한 페미니스트 글쓰기(From the Center: Feminist Essays on Women’s Art)』(1976), 『지역의 유혹: 다중심 사회의 장소감(Lure of the Local: Senses of Place in a Multicentred Society)』(1997), 『언더마인: 토지 이용, 정치, 미술을 통해 달려보는 변화하는 서부의 질주(Undermining: A Wild Ride Through Land Use, Politics, and Art in the Changing West)』(2014) 등이 있다.
책소개
50년 만에 국내 첫 번역 출간
1966년부터 1972년까지 6년간의 개념미술사를 담은 참고문헌
이 책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6년 동안 개념미술과 관련해 행해진 주요 사건들을 모은 일종의 ‘참고문헌’이다. 각 해에 열린 전시와 행사, 발표된 작품과 글, 전시 도록, 인터뷰 등을 참고문헌 형태로 나열하면서, 지은이가 해당 작가나 언급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필요한 만큼 설명과 코멘트를 남겨놓은 형식이다.
이 책의 성격을 명확히 알려주는 지표는 바로 표지 제목이다. “6년: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오브제 작품의 비물질화: 일부 미학적 경계의 정보에 대한 상호참조 도서: 단편화된 텍스트, 예술 작품, 기록, 인터뷰 및 심포지엄이 삽입된 참고문헌으로 구성되며, 연대순으로 나열하고 이른바 개념 또는 정보 또는 아이디어 미술에 중점을 두어, 현재 미대륙, 유럽,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미니멀, 반형태, 시스템, 대지 또는 과정미술과 같은 모호하게 정의된 분야에 대해 (종종 정치적인 의미를 함축하며) 언급한 것으로, 루시 R. 리파드가 편집하고 주석을 달았다.”
한눈에 읽기에 무척이나 어지러운 긴 제목이지만, 지은이가 하려는 말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그 형식과 형태만으로도 ‘개념미술’을 느끼게 해준다. 지은이는 개념미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개념미술이란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고 물질적 형식은 부차적이고, 싸고, 가볍고, 가식이 없거나, ‘비물질화’된 작품을 의미한다.”(8쪽) 이 책 역시 ‘제목’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치고, 가식 없이 아이디어를 밀어붙이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가장 객관적면서 가장 개인적인 연대기
이 책의 성격을 설명하려 할 때 지은이에 대한 설명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루시 리파드는 직접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는 아니지만, 이 시기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개념미술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던 비평가 혹은 증인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었는지, 누가 시작했는지, 누가 무엇을 했고, 어떤 목표와 철학, 정치적 의미가 있었는지,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을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나는 거기에 있었으나 내 기억을 믿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권위적인 개관은 더욱 믿지 못한다. 따라서 뒤늦게 깨닫는 바에서 얻는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그 당시에 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 자신을 많이 인용할 것이다.”(8쪽)
힙합식으로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스웩’이다. 하지만 본문에 담긴 저자 주석과 인터뷰 등을 읽다 보면 이것이 허세만은 아님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비평가이자 큐레이터로서 현장에서 직접 흐름을 느끼고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해 숙고한 후에야 나올 수 있는 그러한 주관적인 언급들이 개념미술과 그 작가에 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한다. 6년간의 개념미술사를 정리한 참고문헌이라는 가장 객관적인 형식 안에 가장 개인적인 기록을 함께 담은 이 묵직한 연대기는, 그러므로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미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물구나무를 서서 미술을 바라보기
뒤샹의 변기 외에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미술 사례라면 1960년 백남준이 공연 중에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퍼포먼스가 있다. 이 책에도 꽤 독특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여러 사람이 한 장씩 찢어 씹은 후 그 종이들을 모아 발효시키는가 하면(58쪽, 존 래섬, 〈예술과 문화〉), 날마다 자신이 만난 사람과 간 곳을 기록해 작품으로 발표하고(113쪽, 온 가와라), 물구나무서기가 작품이 되고(144쪽, 로버트 킨몬트), 무작위로 사람을 택해 미행하고(225쪽, 비토 아콘치, 〈미행 작업〉), 대통령에게 ‘당신이 죽인 것을 먹으’라고 편지를 보낸다(424쪽, 게릴라 아트 액션 그룹).
이런 내용들을 읽다 보면 독자로서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예술이라고?’ 그러나 이 책에 괴짜들의 기행만이 담긴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런 기행에도 목적이 있다. 특히 작가들의 인터뷰와 대담에서는 형태와 주류적인 매체, 물질, 원본성 등 다양한 것들에 반기를 들고 물구나무를 서서 보려는 예술가들의 고민을 파편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물론 ‘개념미술이 무엇인가’
지은이는 후기에서 ‘작가들이 자신의 능력과 재정적인 수단 이상의 구조적인 기술과 씨름하는 대신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기술적인 개념을 다루는 게 가능해졌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가들은 보통 자의적으로 미술이라는 구역 안에 갇혀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마도 이것이 개념미술, 혹은 예술이 오랜 시간 동안 추구해온 새로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 독특하고 놀라운 사건들의 목록을 다시 읽고 개념미술의 태동과 여러 활동, 그 이유와 배경을 확인함으로써 다시 식상해진 예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루시 리파드
1937년 미국 뉴욕 출생의 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액티비스트.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50회 이상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현대미술, 페미니즘, 정치, 장소 등에 대한 다수의 글과 20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했다. 1969년 정치적 예술가 그룹인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 AWC)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76년 여성의 예술 및 정치에 주목하는 작가들과 함께 헤러시스 콜렉티브(Heresies Collective)를 결성했고, 같은 해 뉴욕에서 예술 전문 출판 대안공간인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6년: 1966년부터 1972년 사이 미술 오브제의 비물질화(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1973), 『중심에서: 여성의 미술에 대한 페미니스트 글쓰기(From the Center: Feminist Essays on Women’s Art)』(1976), 『지역의 유혹: 다중심 사회의 장소감(Lure of the Local: Senses of Place in a Multicentred Society)』(1997), 『언더마인: 토지 이용, 정치, 미술을 통해 달려보는 변화하는 서부의 질주(Undermining: A Wild Ride Through Land Use, Politics, and Art in the Changing West)』(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