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설명
이 책은 오늘날 예술 출판, 특히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출판 단위들의 실천을 다룬다. ‘아시아’와 ‘소규모 출판’을 중심으로, 동시대 예술에서 점차 더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 출판 실천을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맥락 안에 배치하고 함께 읽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하여 출판사, 예술가, 기획자, 컬렉티브, 출판 및 유통 공간, 디자이너 등 이 영역의 주요 이니셔티브들의 인터뷰와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진행된 인터뷰는 팬데믹 이후 예술 실천의 조건의 복잡성과 가능성도 함께 보여준다. «방법으로서의 출판» 프로젝트는 서울에 위치한 출판 컬렉티브인 미디어버스에서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소규모 출판 리서치로 전시(2020년 10월 30일–12월 20일, 아트선재센터), 출판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연계된다.
목차
16 아시아 출판 실천: 새로운 보편성을 향하여 — 임경용
36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50 아트북 인 차이나
60 아트 앤드 컬처 아웃리치
70 에이독스
78 더 북 소사이어티 구성원 모집을 위한 초안 — 최빛나
90 마이크로 로지스틱스: 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구정연
102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114 시청각
122 ISBN 93600: 도록도 단행본도 아닌 — 현시원
142 바나나피시 북스
152 방콕 시티시티 갤러리
158 인스티튜트 오브 바바리안 북스
166 장원쉬안
184 타이완 동시대 미술에서의 글쓰기 — 황젠훙
188 다인프린트
196 디스플레이 디스트리뷰트
206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기: 출판과 대중을 향한 사유의 로지스틱스 — 일레인 W. 호
224 포토북 더미스 데이
234 퍼더 리딩
244 그레이 프로젝트
254 하드워킹 굿루킹
262 적을 만드는 책들 — 윤원화
274 헬리콥더 레코즈
282 이레귤러 리듬 어사일럼
290 카이파 타
300 김뉘연 · 전용완
308 민구홍 매뉴팩처링
316 낭
324 신도시
330 샤르자 예술재단
336 싱가포르 아트북페어
342 슬로 번 북스
350 ซอย | 소이
360 템퍼러리 프레스
376 중국 미술사 다시 쓰기와 출판 실천: 캐럴 잉화 루와의 대화 — 임경용
390 더 숍
396 도쿄 진스터 개더링
402 화이트 펑거스
410 옐로 페이지스
416 옐로우 펜 클럽
426 진 쿱
저자 소개
임경용
임경용은 2007년 소규모 출판사 미디어버스와 2010년 더 북 소사이어티를 구정연과 함께 공동으로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출판과 관련된 전시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제록스 프로젝트»(백남준아트센터, 2015),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공동기획, 국립현대미술관, 2016),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좋은 삶»( 디렉토리얼 컬렉티브, 서울시립미술관, 2018) 등이 있다. 알레한드로 루도비코의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1894년 이후 출판의 변화』(미디어버스, 2017)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구정연
구정연은 예술가의 집단적 실천과 지식 생산 및 유통 형태에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해 연구한다. 국민대학교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큐레이터를 거쳐, 미디어버스와 더 북 소사이어티에서 공동 디렉터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작가연구 총서(박찬경, 임흥순)와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11집 ‘초국가적 미술관’(2019), 아카이브 연구 포럼 «부재하는 아카이브: 디자인, 건축, 시각문화»(2019), 한국 근현대미술 개론서 『한국미술 1900–2020』(2021–2022), 연계 포럼 «미술사의 기술»(2021) 등을 기획 및 편집했다. 현재 리움미술관 교육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빛나
최빛나는 네덜란드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워킹 포 커먼스’의 디렉터, 2016 광주비엔날레: 제8기후대 ‘ 예술을 무엇을 하는가’의 큐레이터, 2022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공동 예술 감독을 역임했다.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 큐레이터로 선정됐다. 독일 쾰른 ‘세계예술 아카데미’ (ADKDW)의 멤버이자 프랑스 파리 에이필드(Afield)의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현시원
현시원은 서울에 기반한 큐레이터로 2013년부터 전시공간 시청각을 공동 운영했다. 2020년부터는 오피스 형태의 시청각 랩으로 변화해 운영한다. 근래에는 전시 도면에 관한 연구로 영상예술학 박사 논문을 썼다. 동시대 미술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출판물을 기획했다. 큐레이터로서 전시라는 매체, 공간의 특성과 전시의 수행성, 출판, 디지털 뮤제올로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다뤄왔다.
윤원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문화 연구자, 비평가, 번역자다. 저서로 『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불완전성에 관하여』, 『그림 창문 거울』,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등이 있다. 부산비엔날레 2022에서 온라인 저널 『땅이 출렁일 때』를 편집했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서 ‹부드러운 지점들›을 공동 제작했다.
황젠훙
황젠훙은 국립타이베이 예술대학 융합예술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콴두미술관 디렉터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COQ』(2009), 『독립적 담론』(2010), 『트랜스-플렉스 어젠다』(2011), 『EMU』(2012), 『 몽타주의 미소』(2013), 『범식민주의의 편린들』(2019) 등이 있다. 또한 영화, 동시대 예술과 스펙타클 비평가로 활동하며, 들뢰즈, 보드리야르, 랑시에르의 저작을 번역했다.
일레인 호
최근 상품과 사람의 불법적인 이동을 조사하던 가운데, 디스플레이 디스트리뷰트가 기획하는 라이트 로지스틱스 프로젝트는 독자와 반자율적인 출판사 사이의 통로를 위한 유통 플랫폼과 여행기로 성장하고 있다. ‘제때 도착하지 않는’ 기업으로 묘사되는 라이트 로지스틱스는 글로벌 물류 구조 안의 여행자 네트워크에서 잉여의 공간을 활용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 지역의 비판적 예술과 이론 실천의 인쇄물 제작과 함께 다른 형식의 만남과 지식 교환을 만들어낸다. 일레인 W. 호는 2016년 8월 이달의 라이트 로지스틱스 배송원으로 선정됐고, 이후 계속 일하고 있다.
책 속에서
"2019년 싱가포르를 비롯해 홍콩과 샤르자, 타이베이,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의 도시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트북페어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 운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스펙터클이나 숫자가 아닌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설명하고 싶었고, 보편적 개념으로 ‘아시아’와 ‘소규모 출판’을 선택했다. 물론 이들의 활동을 통해 소규모 출판의 가치를 제안하거나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공동체적 삶, 자기 조직화, 중앙에 집중된 지식과 정보의 민주적인 분배, 매체에 대한 실험 등등. 이러한 가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이 도착지일 필요는 없다. 리서치 기간에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지향점을 가지고 활동하기보다 항상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겼으니까." (임경용, 아시아 출판 실천: 새로운 보편성을 향하여, 32페이지)
"중국은 방대하고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범위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자주 출판에 관한 한 다종 다양한 창작 그룹이 있는데, abC가 참여하는 자주 출판문화는 사실 독립 예술가가 주축이 된 창작 그룹이다. 중국 미술계는 항상 사업과 정치라는 두 강자의 구속을 받아왔다. 이런 자주 출판문화를 들여다보면 중국 주류 미술계와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중국 현대미술은 1990년대 이후 자본화 되었고 2000년대에 정점(혹은 거품)에 도달했다. 이들처럼 시장의 중심에 있는 예술가에 비해 일부 초기 중국 자주 출판 공동체들은 분명 좀 더 주변화되고 전위적이다." (아트북 인 차이나, 50페이지)
"이런 조건에서 책의 유통 방식은 책이 가진 의도와 형식에 따라 다시 고찰돼야 한다. 어떤 의도가 담기는지에 따라, 어떤 형식으로 그 의도가 물화되는지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현 유통 구조를 이용해 책의 형식이 새롭게 고안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문고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펭귄북스의 책들은 펭귄 북스의 창립자인 알렌 레인이 1934년 철도 여행을 위해 기차를 기다리면서 떠올리게 된 시리즈이다. 이동식 라이프에 맞춰 주머니에 휴대 가능한 판형으로 저렴하고, 분량 또한 기차에서 읽기 적당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모두가 로지스틱스의 효율성을 추구할 때, 상당수의 예술 혹은 독립 출판물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네트워크로서 마이크로 로지스틱스를 추구한다." (구정연, 마이크로 로지스틱스: 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94페이지)
"한국 미술사에서 누락된 여성 미술의 서사를 발굴하는 것은 미술사를 다시 쓰고, 더 풍부한 계보를 마련하는 데 당연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사와 기억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는 좀 더 지금의 시공에 필요한 이야기와 공감을 발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가령, 페미니스트 컬렉티브 입김의 활동을 적극 다시 소개하고, 전시와 행사 등을 통해 미술계에서 이들의 작업을 환기하고자 했는데, 이는 단순히 잊혀진 여성작가들과 작업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이상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2019년 11월 합정지구에서 열린 «비트윈 더 라인스» 전시는 ‘페미당당’이라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예술가 그룹이 입김을 만나 인터뷰하고 조사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전유하거나 전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106페이지)
"시청각의 경우로 한정해보면, 우리는 처음에 공간 이름을 ‘도큐멘트’(document)로 할 것인지 고민했을 정도로 시청각을 종이, 글쓰기, 출판에 적합한 공간으로 인식했다. 안인용과 현시원에게 ‘글’은 세계를 만나는 창구이자 각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이며, 동시에 개인적 매체이다. 시청각은 대학 학보사 출신의 두 큐레이터, 기자가 모여 시작한 곳이다. 우리가 꽤 독립적으로 즐겁게,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 ‘출판’이었다.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1980년대 혹은 더 이전인 20세기 초반에도 미술가들에게 출판은 중요했다." (시청각, 116페이지)
"그렇다면 책보다는 신문에 가깝게, 조금 더 분할되고 분절된 책은 어떨까? 전시와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책을 전시장에 함께 놓을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내가 언급하려고 하는 두 번째 책은 2015년 시청각에서 열린 «무브 앤 스케일» 전의 기간에 맞춰 나온 동명의 책이다. 『무브 앤 스케일』의 경우 디자이너 김형재 홍은주와 처음부터 각각 한 명의 작가마다 8–12페이지짜리의 분절된 책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무브 앤 스케일»은 ‘미술 작품의 보관과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 을 전시를 통해서 보여 주고자 했고 도록은 한 권의 책이 아닌 8개의 ‘페이지들의 묶음’을 만들고자 했다." (현시원, ISBN 93600: 도록도 단행본도 아닌, 136페이지)
"이제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으니 다시 독립 출판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이 분야의 유명한 경구로,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이 1920년대에 말한 “동료를 찾기 위해 출판한다!”가 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이 진술의 살아 있는 성격인데, 이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간행물이나 팸플릿, 포스터가 아니라 ‘비관적 낙관주의자’ 스티븐 슈카이티스가 “의미의 공동 생산”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출판의 목적은 사고 과정의 마지막이나 예술적이고 지적인 노동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전개할 사회적 과정을 확립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최근 슈카이티스는 이메일에서 이런 흥미로운 단서를 던졌다. “오늘 아침에 깨달은 것, 토탈 축구는 물류다.” 이는 스포츠와 출판을 연결하는 독특한 지점이 된다. 토탈 축구의 중요한 특징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자신의 역할을 유연하게 조직한다는 점이다. 축구를 잘 몰라서 정확하게는 설명할 수 없지만, 독립 출판과 관련해 보자면 작가 겸 출판인이 작은 규모와 인력 부족 탓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저자이자 디자이너, 유통업자 등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일레인 호,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기: 출판과 대중을 향한 사유의 로지스틱스, 212페이지)
"그 속에서 소규모 출판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경로와 교차점을 탐색하는 것만큼이나 지도에 없는 균열과 엉킨 매듭을 식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시아 작가들의 비디오 작업을 소개하는 웹 플랫폼 ‘시카다 채널’은 그런 부분적인 탐구의 시점들을 이어 붙이는 일종의 지도 제작술을 시도한다. 자칫 웹 카탈로그처럼 보이기 쉬운 온라인 전시의 약점을 작지만 자기 완결적인 맥락을 구축할 수 있다는 출판의 이점으로 전환하여, 이들은 매번 한 작가의 비디오 작업 한 점을 온라인으로 상영하고 그에 관한 작가의 인터뷰를 PDF파일로 첨부하는 방식으로 2019년에 총 5개의 이슈를 발간했다.5 이처럼 지리적 경계에 갇히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와 무빙 이미지의 역량을 통해 아시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소규모 출판이 반드시 종이책으로 구현될 필요는 없다." (윤원화, 적을 만드는 책들, 272페이지)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아트북 페어가 예술가와 출판사를 위한 필수적인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걸 보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호주에서 주택과 임대 위기가 계속됨에 따라 많은 문화 단체가 오프라인 공간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참여를 위한 대안적인 모델과 방법이 표면 위에 떠올랐는데, 공유 예술 공간이나 팝업 이벤트 및 아트북페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면 기회는 동료와 공동체가 함께 모여 이러한 문화를 축하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멜버른 아트북페어나 퍼머넌트 아트북 페어, 그리고 서브스테이션이 만든 대면 연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작은 서점으로 이러한 연례 행사와 공유 창작 공간은, 일반 독자와 지역 창작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아시아 출판물을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세심하게 고민하여 만든 색깔과 이미지, 타이포그래피, 종이의 질감을 손에 들고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슬로 번 북스, 348페이지)
"우리가 태국 문학을 번역하는 이유가 그 작품들이 서구 정전에 포함될 수 있도록, 국경 너머 독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은 아니다. 그런 좁은 종류의 접근은 복잡성과 일상의 경험 구조에 내재한 미묘한 차이를 단순화한다. 따라서 소이 문학의 필수적인 의제는 안팎에서 작동하는 제국주의와 독재의 힘으로부터 내러티브와 지식을 탈식민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태국 문화 상상 속에서 석회화된 민족주의 역사와 신화를 장난스럽게 풀어낸 우티스 해마물의 소설인 『이야기꾼』(จุติ)을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설이 풀어내려 하는 봉건주의적 사고방식과 후원 제도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대해 공공연하게 대처하는 젊은 세대의 정신과 반향하는 만큼, 시의적절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이, 358페이지)
"템퍼러리 프레스의 책들이 큰 서점에 입고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우선적인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러 대형 서점에 접근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책의 다양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유통이나 판매에 대해 아직은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 책을 대량으로 제작하지 않고 재고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상적인 것이겠지만, 우리가 작업을 생산하는 것으로부터 충분히 탄력을 얻을 수 있다면 유통이나 판매, 마케팅과 같은 출판의 다른 측면을 훨씬 더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책과 그 독자들이 우리를 위해 ‘작동’하기를 희망한다." (템퍼러리 프레스, 366페이지)
"중국에서 출판과 출판물 유통은 1949년 이래로 정부에 의해 일반적으로 관리돼 왔다. 1950년대부터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 공식적인 출판사와 예술 학교에서 발행한 미술 저널은 예술에 대한 예술적 실천과 사상의 유통을 위한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1950년 창간호부터 1966년까지 발행된,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 전문 저널인 『메이슈』(美术, 미술)의 표지와 내용을 살펴보면 이 잡지가 정권에 의해 규정된 예술의 경계를 보여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지에서 강조되고 잡지에서 논의된 것은 고도로 정치화되고 이데올로기적인 담론들과 연결됐다. 문화혁명 기간, 거의 십 년 동안 모든 출판 실천이 중단되었고, 1976년 문화혁명이 끝난 이후 이것들은 점차적으로 재평가됐다." (캐럴 잉화 루와의 대화, 378페이지)
"옐로우 펜 클럽의 글쓰기는 상호 편집이라는 방법론과 각자의 위치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주간 모임을 할 때부터 서로 글을 보여 주고 개입하는 루틴이 생겼다. 그저 번뜩이는 아이디어 단계이거나 맘에 드는 세 문장 정도 쓴 상태일 때도 서로 보여 준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너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는 태도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피드백하는 편이다. 어쩌면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혹은 지면에 기고하는 사람이라는 부담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이렇게 서로 편집자로서 긴밀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글의 가독성이 좋아지고 읽기에 더 좋은 리듬을 갖게 되는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 글의 맛을 더 살리게 되기도 한다." (옐로우 펜 클럽, 418페이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알아야 한다. 책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리에게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생각이 무엇인지, 판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하고 싶으며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모든 단계에서 꿈을 품어야 하고 모든 벽을 부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래서 DIY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독립성이다. 독립적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타인과 분리하거나 소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뭔가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이런 정신이 있고, 덕분에 뭔가를 함께할 수 있다고 본다. 처음에 진 쿱은 단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몇몇 생각을 공유하고 홍콩에 진을 알림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고자 했다." (진 쿱, 430페이지)
책 설명
이 책은 오늘날 예술 출판, 특히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출판 단위들의 실천을 다룬다. ‘아시아’와 ‘소규모 출판’을 중심으로, 동시대 예술에서 점차 더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 출판 실천을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맥락 안에 배치하고 함께 읽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하여 출판사, 예술가, 기획자, 컬렉티브, 출판 및 유통 공간, 디자이너 등 이 영역의 주요 이니셔티브들의 인터뷰와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진행된 인터뷰는 팬데믹 이후 예술 실천의 조건의 복잡성과 가능성도 함께 보여준다. «방법으로서의 출판» 프로젝트는 서울에 위치한 출판 컬렉티브인 미디어버스에서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소규모 출판 리서치로 전시(2020년 10월 30일–12월 20일, 아트선재센터), 출판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연계된다.
목차
16 아시아 출판 실천: 새로운 보편성을 향하여 — 임경용
36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50 아트북 인 차이나
60 아트 앤드 컬처 아웃리치
70 에이독스
78 더 북 소사이어티 구성원 모집을 위한 초안 — 최빛나
90 마이크로 로지스틱스: 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구정연
102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114 시청각
122 ISBN 93600: 도록도 단행본도 아닌 — 현시원
142 바나나피시 북스
152 방콕 시티시티 갤러리
158 인스티튜트 오브 바바리안 북스
166 장원쉬안
184 타이완 동시대 미술에서의 글쓰기 — 황젠훙
188 다인프린트
196 디스플레이 디스트리뷰트
206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기: 출판과 대중을 향한 사유의 로지스틱스 — 일레인 W. 호
224 포토북 더미스 데이
234 퍼더 리딩
244 그레이 프로젝트
254 하드워킹 굿루킹
262 적을 만드는 책들 — 윤원화
274 헬리콥더 레코즈
282 이레귤러 리듬 어사일럼
290 카이파 타
300 김뉘연 · 전용완
308 민구홍 매뉴팩처링
316 낭
324 신도시
330 샤르자 예술재단
336 싱가포르 아트북페어
342 슬로 번 북스
350 ซอย | 소이
360 템퍼러리 프레스
376 중국 미술사 다시 쓰기와 출판 실천: 캐럴 잉화 루와의 대화 — 임경용
390 더 숍
396 도쿄 진스터 개더링
402 화이트 펑거스
410 옐로 페이지스
416 옐로우 펜 클럽
426 진 쿱
저자 소개
임경용
임경용은 2007년 소규모 출판사 미디어버스와 2010년 더 북 소사이어티를 구정연과 함께 공동으로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출판과 관련된 전시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제록스 프로젝트»(백남준아트센터, 2015),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공동기획, 국립현대미술관, 2016),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좋은 삶»( 디렉토리얼 컬렉티브, 서울시립미술관, 2018) 등이 있다. 알레한드로 루도비코의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1894년 이후 출판의 변화』(미디어버스, 2017)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구정연
구정연은 예술가의 집단적 실천과 지식 생산 및 유통 형태에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해 연구한다. 국민대학교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큐레이터를 거쳐, 미디어버스와 더 북 소사이어티에서 공동 디렉터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작가연구 총서(박찬경, 임흥순)와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11집 ‘초국가적 미술관’(2019), 아카이브 연구 포럼 «부재하는 아카이브: 디자인, 건축, 시각문화»(2019), 한국 근현대미술 개론서 『한국미술 1900–2020』(2021–2022), 연계 포럼 «미술사의 기술»(2021) 등을 기획 및 편집했다. 현재 리움미술관 교육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빛나
최빛나는 네덜란드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워킹 포 커먼스’의 디렉터, 2016 광주비엔날레: 제8기후대 ‘ 예술을 무엇을 하는가’의 큐레이터, 2022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공동 예술 감독을 역임했다.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 큐레이터로 선정됐다. 독일 쾰른 ‘세계예술 아카데미’ (ADKDW)의 멤버이자 프랑스 파리 에이필드(Afield)의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현시원
현시원은 서울에 기반한 큐레이터로 2013년부터 전시공간 시청각을 공동 운영했다. 2020년부터는 오피스 형태의 시청각 랩으로 변화해 운영한다. 근래에는 전시 도면에 관한 연구로 영상예술학 박사 논문을 썼다. 동시대 미술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출판물을 기획했다. 큐레이터로서 전시라는 매체, 공간의 특성과 전시의 수행성, 출판, 디지털 뮤제올로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다뤄왔다.
윤원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문화 연구자, 비평가, 번역자다. 저서로 『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불완전성에 관하여』, 『그림 창문 거울』,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등이 있다. 부산비엔날레 2022에서 온라인 저널 『땅이 출렁일 때』를 편집했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에서 ‹부드러운 지점들›을 공동 제작했다.
황젠훙
황젠훙은 국립타이베이 예술대학 융합예술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콴두미술관 디렉터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COQ』(2009), 『독립적 담론』(2010), 『트랜스-플렉스 어젠다』(2011), 『EMU』(2012), 『 몽타주의 미소』(2013), 『범식민주의의 편린들』(2019) 등이 있다. 또한 영화, 동시대 예술과 스펙타클 비평가로 활동하며, 들뢰즈, 보드리야르, 랑시에르의 저작을 번역했다.
일레인 호
최근 상품과 사람의 불법적인 이동을 조사하던 가운데, 디스플레이 디스트리뷰트가 기획하는 라이트 로지스틱스 프로젝트는 독자와 반자율적인 출판사 사이의 통로를 위한 유통 플랫폼과 여행기로 성장하고 있다. ‘제때 도착하지 않는’ 기업으로 묘사되는 라이트 로지스틱스는 글로벌 물류 구조 안의 여행자 네트워크에서 잉여의 공간을 활용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 지역의 비판적 예술과 이론 실천의 인쇄물 제작과 함께 다른 형식의 만남과 지식 교환을 만들어낸다. 일레인 W. 호는 2016년 8월 이달의 라이트 로지스틱스 배송원으로 선정됐고, 이후 계속 일하고 있다.
책 속에서
"2019년 싱가포르를 비롯해 홍콩과 샤르자, 타이베이,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의 도시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트북페어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 운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스펙터클이나 숫자가 아닌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설명하고 싶었고, 보편적 개념으로 ‘아시아’와 ‘소규모 출판’을 선택했다. 물론 이들의 활동을 통해 소규모 출판의 가치를 제안하거나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공동체적 삶, 자기 조직화, 중앙에 집중된 지식과 정보의 민주적인 분배, 매체에 대한 실험 등등. 이러한 가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이 도착지일 필요는 없다. 리서치 기간에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지향점을 가지고 활동하기보다 항상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겼으니까." (임경용, 아시아 출판 실천: 새로운 보편성을 향하여, 32페이지)
"중국은 방대하고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범위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자주 출판에 관한 한 다종 다양한 창작 그룹이 있는데, abC가 참여하는 자주 출판문화는 사실 독립 예술가가 주축이 된 창작 그룹이다. 중국 미술계는 항상 사업과 정치라는 두 강자의 구속을 받아왔다. 이런 자주 출판문화를 들여다보면 중국 주류 미술계와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중국 현대미술은 1990년대 이후 자본화 되었고 2000년대에 정점(혹은 거품)에 도달했다. 이들처럼 시장의 중심에 있는 예술가에 비해 일부 초기 중국 자주 출판 공동체들은 분명 좀 더 주변화되고 전위적이다." (아트북 인 차이나, 50페이지)
"이런 조건에서 책의 유통 방식은 책이 가진 의도와 형식에 따라 다시 고찰돼야 한다. 어떤 의도가 담기는지에 따라, 어떤 형식으로 그 의도가 물화되는지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현 유통 구조를 이용해 책의 형식이 새롭게 고안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문고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펭귄북스의 책들은 펭귄 북스의 창립자인 알렌 레인이 1934년 철도 여행을 위해 기차를 기다리면서 떠올리게 된 시리즈이다. 이동식 라이프에 맞춰 주머니에 휴대 가능한 판형으로 저렴하고, 분량 또한 기차에서 읽기 적당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모두가 로지스틱스의 효율성을 추구할 때, 상당수의 예술 혹은 독립 출판물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네트워크로서 마이크로 로지스틱스를 추구한다." (구정연, 마이크로 로지스틱스: 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94페이지)
"한국 미술사에서 누락된 여성 미술의 서사를 발굴하는 것은 미술사를 다시 쓰고, 더 풍부한 계보를 마련하는 데 당연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사와 기억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는 좀 더 지금의 시공에 필요한 이야기와 공감을 발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가령, 페미니스트 컬렉티브 입김의 활동을 적극 다시 소개하고, 전시와 행사 등을 통해 미술계에서 이들의 작업을 환기하고자 했는데, 이는 단순히 잊혀진 여성작가들과 작업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이상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2019년 11월 합정지구에서 열린 «비트윈 더 라인스» 전시는 ‘페미당당’이라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예술가 그룹이 입김을 만나 인터뷰하고 조사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전유하거나 전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106페이지)
"시청각의 경우로 한정해보면, 우리는 처음에 공간 이름을 ‘도큐멘트’(document)로 할 것인지 고민했을 정도로 시청각을 종이, 글쓰기, 출판에 적합한 공간으로 인식했다. 안인용과 현시원에게 ‘글’은 세계를 만나는 창구이자 각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이며, 동시에 개인적 매체이다. 시청각은 대학 학보사 출신의 두 큐레이터, 기자가 모여 시작한 곳이다. 우리가 꽤 독립적으로 즐겁게,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 ‘출판’이었다.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1980년대 혹은 더 이전인 20세기 초반에도 미술가들에게 출판은 중요했다." (시청각, 116페이지)
"그렇다면 책보다는 신문에 가깝게, 조금 더 분할되고 분절된 책은 어떨까? 전시와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책을 전시장에 함께 놓을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내가 언급하려고 하는 두 번째 책은 2015년 시청각에서 열린 «무브 앤 스케일» 전의 기간에 맞춰 나온 동명의 책이다. 『무브 앤 스케일』의 경우 디자이너 김형재 홍은주와 처음부터 각각 한 명의 작가마다 8–12페이지짜리의 분절된 책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무브 앤 스케일»은 ‘미술 작품의 보관과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 을 전시를 통해서 보여 주고자 했고 도록은 한 권의 책이 아닌 8개의 ‘페이지들의 묶음’을 만들고자 했다." (현시원, ISBN 93600: 도록도 단행본도 아닌, 136페이지)
"이제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으니 다시 독립 출판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이 분야의 유명한 경구로,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이 1920년대에 말한 “동료를 찾기 위해 출판한다!”가 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이 진술의 살아 있는 성격인데, 이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간행물이나 팸플릿, 포스터가 아니라 ‘비관적 낙관주의자’ 스티븐 슈카이티스가 “의미의 공동 생산”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출판의 목적은 사고 과정의 마지막이나 예술적이고 지적인 노동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전개할 사회적 과정을 확립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최근 슈카이티스는 이메일에서 이런 흥미로운 단서를 던졌다. “오늘 아침에 깨달은 것, 토탈 축구는 물류다.” 이는 스포츠와 출판을 연결하는 독특한 지점이 된다. 토탈 축구의 중요한 특징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자신의 역할을 유연하게 조직한다는 점이다. 축구를 잘 몰라서 정확하게는 설명할 수 없지만, 독립 출판과 관련해 보자면 작가 겸 출판인이 작은 규모와 인력 부족 탓에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저자이자 디자이너, 유통업자 등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일레인 호,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기: 출판과 대중을 향한 사유의 로지스틱스, 212페이지)
"그 속에서 소규모 출판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경로와 교차점을 탐색하는 것만큼이나 지도에 없는 균열과 엉킨 매듭을 식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시아 작가들의 비디오 작업을 소개하는 웹 플랫폼 ‘시카다 채널’은 그런 부분적인 탐구의 시점들을 이어 붙이는 일종의 지도 제작술을 시도한다. 자칫 웹 카탈로그처럼 보이기 쉬운 온라인 전시의 약점을 작지만 자기 완결적인 맥락을 구축할 수 있다는 출판의 이점으로 전환하여, 이들은 매번 한 작가의 비디오 작업 한 점을 온라인으로 상영하고 그에 관한 작가의 인터뷰를 PDF파일로 첨부하는 방식으로 2019년에 총 5개의 이슈를 발간했다.5 이처럼 지리적 경계에 갇히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와 무빙 이미지의 역량을 통해 아시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소규모 출판이 반드시 종이책으로 구현될 필요는 없다." (윤원화, 적을 만드는 책들, 272페이지)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아트북 페어가 예술가와 출판사를 위한 필수적인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걸 보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호주에서 주택과 임대 위기가 계속됨에 따라 많은 문화 단체가 오프라인 공간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참여를 위한 대안적인 모델과 방법이 표면 위에 떠올랐는데, 공유 예술 공간이나 팝업 이벤트 및 아트북페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면 기회는 동료와 공동체가 함께 모여 이러한 문화를 축하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멜버른 아트북페어나 퍼머넌트 아트북 페어, 그리고 서브스테이션이 만든 대면 연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작은 서점으로 이러한 연례 행사와 공유 창작 공간은, 일반 독자와 지역 창작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아시아 출판물을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세심하게 고민하여 만든 색깔과 이미지, 타이포그래피, 종이의 질감을 손에 들고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슬로 번 북스, 348페이지)
"우리가 태국 문학을 번역하는 이유가 그 작품들이 서구 정전에 포함될 수 있도록, 국경 너머 독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은 아니다. 그런 좁은 종류의 접근은 복잡성과 일상의 경험 구조에 내재한 미묘한 차이를 단순화한다. 따라서 소이 문학의 필수적인 의제는 안팎에서 작동하는 제국주의와 독재의 힘으로부터 내러티브와 지식을 탈식민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태국 문화 상상 속에서 석회화된 민족주의 역사와 신화를 장난스럽게 풀어낸 우티스 해마물의 소설인 『이야기꾼』(จุติ)을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설이 풀어내려 하는 봉건주의적 사고방식과 후원 제도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대해 공공연하게 대처하는 젊은 세대의 정신과 반향하는 만큼, 시의적절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이, 358페이지)
"템퍼러리 프레스의 책들이 큰 서점에 입고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우선적인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러 대형 서점에 접근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책의 다양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유통이나 판매에 대해 아직은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 책을 대량으로 제작하지 않고 재고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상적인 것이겠지만, 우리가 작업을 생산하는 것으로부터 충분히 탄력을 얻을 수 있다면 유통이나 판매, 마케팅과 같은 출판의 다른 측면을 훨씬 더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책과 그 독자들이 우리를 위해 ‘작동’하기를 희망한다." (템퍼러리 프레스, 366페이지)
"중국에서 출판과 출판물 유통은 1949년 이래로 정부에 의해 일반적으로 관리돼 왔다. 1950년대부터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 공식적인 출판사와 예술 학교에서 발행한 미술 저널은 예술에 대한 예술적 실천과 사상의 유통을 위한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1950년 창간호부터 1966년까지 발행된,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 전문 저널인 『메이슈』(美术, 미술)의 표지와 내용을 살펴보면 이 잡지가 정권에 의해 규정된 예술의 경계를 보여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지에서 강조되고 잡지에서 논의된 것은 고도로 정치화되고 이데올로기적인 담론들과 연결됐다. 문화혁명 기간, 거의 십 년 동안 모든 출판 실천이 중단되었고, 1976년 문화혁명이 끝난 이후 이것들은 점차적으로 재평가됐다." (캐럴 잉화 루와의 대화, 378페이지)
"옐로우 펜 클럽의 글쓰기는 상호 편집이라는 방법론과 각자의 위치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주간 모임을 할 때부터 서로 글을 보여 주고 개입하는 루틴이 생겼다. 그저 번뜩이는 아이디어 단계이거나 맘에 드는 세 문장 정도 쓴 상태일 때도 서로 보여 준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너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는 태도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피드백하는 편이다. 어쩌면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혹은 지면에 기고하는 사람이라는 부담이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이렇게 서로 편집자로서 긴밀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글의 가독성이 좋아지고 읽기에 더 좋은 리듬을 갖게 되는 편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 글의 맛을 더 살리게 되기도 한다." (옐로우 펜 클럽, 418페이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알아야 한다. 책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리에게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생각이 무엇인지, 판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하고 싶으며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모든 단계에서 꿈을 품어야 하고 모든 벽을 부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래서 DIY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독립성이다. 독립적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타인과 분리하거나 소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뭔가를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이런 정신이 있고, 덕분에 뭔가를 함께할 수 있다고 본다. 처음에 진 쿱은 단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몇몇 생각을 공유하고 홍콩에 진을 알림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고자 했다." (진 쿱, 43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