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노버트 위너
옮긴이 김재영
발행처 읻다
발행일 2023년 8월 31일
판형 152×223mm
면수 348쪽
ISBN 9791189433185
“나는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얻은 지식의 열매 중
사이버네틱스가 가장 큰 열매라고 생각한다.”
_그레고리 베이트슨(인류학자, 《마음의 생태학》의 저자)
“읻다 ‘연관’ 시리즈 첫 번째 책. 미국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가 1948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사이버네틱스》는 순환적 제어 메커니즘을 이용해 스스로 조직화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계를 분석한다.
위너는 이 책에서 제어공학, 통신공학, 신경생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전기·기계적 계, 생물의 신경계, 개체가 모여 이루어지는 사회처럼 광범위한 사례를 다룬다. 위너가 보기에 정보 교환으로 되먹임 고리가 형성되어 계의 제어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선박의 조타 장치와 인간의 시신경-대뇌 계는 다르지 않다. 전자계산기의 기억 장치와 인간 두뇌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생물이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참조해 환경에 맞게 사용하는 학습을 하는 것처럼, 기계도 경험에서 학습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위너가 그려내는 사이버네틱스는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현상들을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축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사이버네틱스》는 1948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정보와 제어 이론이 주는 참신함과 당혹감과 함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다. 노버트 위너는 곧바로 《인간의 인간적 사용》(1950)을 출간하여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1961년 제2판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이론을 정립, 소개하는 내용에서 나아가 10여 년 동안 발전해 온 아이디어에 대한 위너의 첨언을 담고 있다.
제1장 ‘뉴턴의 시간과 베르그손의 시간’에서 제3장 ‘시계열,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까지 위너는 ‘학습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현대의 자동 기계를 설명하기 위해 생리학의 메커니즘을 활용해야 하며, 이 메커니즘과 시관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뉴턴의 역학보다 기브스의 통계역학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고찰이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한 토대가 된다.
이 책의 중반부는 다음과 같은 위너의 변론과 함께 다양한 수식이 등장한다.
“우리는 수학적 기호법과 수학적 기법을 될수록 피했지만, 3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타협해야 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정확히 수학적 기호법이 적합한 언어가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피하려면 비전문가는 거의 이해하지 못할 장황한 문장을 써야만 할 것이며, 수학적 기호에 익숙한 독자들도 이러한 문구를 수학적 기호로 번역하는 능력을 사용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타협은 수학적 기호를 풍부하게 말로 설명하여 보충하는 것이다.” 난해한 수식을 통해 ‘정보의 되먹임(feedback)에 의한 제어’와 ‘항상성(homeostasis)’을 설명하면서 정보 이론과 생리학 이론을 결합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러한 작업은 시각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거치며 뉴런과 뇌의 활동으로 연결 짓는다. 주사(scanning) 과정을 통해 하나의 대상물을 변환할 수 있는 군(group)으로 추출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산출물이 우리의 감각과 인상을 통해 정보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위너는 실조(ataxia) 현상 등을 예로 제시하며 결손된 감각을 보완하는 관찰을 정신병리학과 장애의 문제로 확장해 사이버네틱스와 뇌의 관계에 대한 위너의 관점을 제시한다.
1948년 초판의 마지막 장인 제8장 ‘정보, 언어 및 사회’는 폰 노이만의 게임 이론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체스 두는 기계에 대한 위너의 예측을 담고 있으며, 다세포 생명체와 공동 사회를 시작으로 구성된 개체들 사이에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한다. 1961년 2판에서 추가된 제9장과 제10장은 초판의 보론의 성격을 갖는다. 생물의 특징으로 학습하는 능력과 스스로 증식하는 능력을 제시하면서, 이 두 능력을 기계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또한 전자공학의 발전과 자기상관함수라는 개념의 발견을 통해 뇌파를 미세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 책의 주요 발견 중 하나인 진동수 끌어당김에서 비롯한 비선형 상호작용이 만들 수 있는 자체 조직계에 대한 암시로 끝맺는다.
사이버네틱스, 20세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지적 운동의 탄생
노버트 위너는 무작위 잡음을 수학적으로 분석해 확률과정론과 전자공학이 발전하는 데 크게 공헌한 수학자다. 그러나 오늘날 위너는 MIT 교수로 재직한 제도권 학자보다는 방대한 학식을 자랑하며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고 거대한 규모로 독창적인 학제 간 연구의 청사진을 그려낸 기획자로, 또 자신이 제출한 기획에 내재한 위험을 고발한 사회사상가로 유명하다.
전쟁의 포연이 간신히 걷힌 1946년 3월, 뉴욕에서 신경생리학자, 수학자, 공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메이시 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생물학적 및 사회적 계의 되먹임(피드백) 메커니즘과 순환적 인과’였다. 회의 참가자들이 다룬 개별 문제는 신경망의 논리적 모사, 컴퓨터의 자율적 학습, 시신경과 대뇌의 시지각 메커니즘 등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행동의 결과를 반영해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자체 조절 과정을 이용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 회의의 근본적인 목표였다. 그 뒤에도 1953년까지 계속 열린 이 회의는 동물 행동과 인간 심리, 사회, 언어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서 자체 조절과 순환적 인과를 찾아내고, 이 현상들을 다루는 공전의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 갔다.
메이시 회의는 오늘날 ‘사이버네틱스’라고 부르는 거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형성한 요람이었다. 메이시 회의에 수학자로 참여한 위너는 1940년대 초부터 다양한 간학제적 연구를 수행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되먹임을 이용해 복잡한 계를 제어하는 일반 이론과 사례를 다룬 책 《사이버네틱스》를 집필해 1948년 발표했다.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기계, 생물, 인간, 사회를 아우르는 대담한 통찰
겨울에 자동차를 운전해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매일 지나던 길을 통과하려고 보니 눈이 내려 빙판길이 되었는데, 이 길을 운전해 지나가야 한다. 빙판길 위에서 평소처럼 차를 몰면 크게 미끄러져 사고가 나기 쉽다. 안전하게 길을 지나기 위해 그는 전방을 주시하고 핸들을 섬세하게 조정하며 가속과 제동을 하면서 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바로바로 운전에 반영해 나간다. 가령 운전자는 더 가속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바로 진행하던 가속을 중단한다.
이것이 바로 목적(빙판길을 지나 출근)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행동의 결과를 다시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되먹임, 특히 사전 정보를 이용해 기존 행동의 강도를 줄이는 줄임 되먹임(음성 피드백)을 이용하는 사례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목적 있는 행동을 달성하기 위해 되먹임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행위 주체가 인간일 때만 되먹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행위 주체는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하는 각종 장기처럼 생체일 수도 있고, 먼 거리를 나아가기 위해 지형지물을 관찰하고 기상 정보를 받아들여 진로를 바꾸는 철새일 수도 있으며, 움직이는 비행기를 맞추기 위해 비행기의 위치와 속도를 관찰하고 예측 포격을 실시하는 대공 예측기일 수도, 생물 개체가 모이고 조직화되어 자체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
거꾸로,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정보를 수집하고 단기 목표를 수정하며 목적을 달성하도록 조직화된 계, 즉 위너가 194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로 ‘목적론적’ 계에는 항상 (줄임) 되먹임이라는 공통 제어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이때 되먹임이 이루어지려면 환경을 살피고 획득한 정보를 다시 행위 주체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여기서 위너는 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느냐가 아니라, 되먹임 자체가 이루는 구조에 방점을 찍는다. 따라서 위너가 보기에 인간에게 절단된 수족을 대신할 의수족이나 상실한 감각을 대신할 보형물을 만드는 문제는, 해당 기관이 가진 되먹임 구조를 공학적으로 해명하고 그것을 대신하는 기계를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 많은 기계가 생물계에 존재하는 제어 메커니즘을 모방하여 제작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간, 동물, 기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목적론적 계를 제어와 정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축으로 추상화해 그 제어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나아가 한 영역에서 해명된 제어 메커니즘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기획이 바로 위너가 그려내는 사이버네틱스다. 사이버네틱스는 따라서 처음부터 학제 간 연구를 표방했으며, 다양한 이론적 모형을 포괄하면서도 그 모형을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에 응용해 실제적 결과를 도출하려고 했다. 위너는 과학의 경계 영역에서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이 독립적으로 뭉쳐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공동으로 결과를 내놓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사이버네틱스 공동체를 꿈꾸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 및 후속 저작에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지 모르는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비평적 작업도 지속했다. 위너는 항상 기술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위너에게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발달한 기술이란 영국 작가 제이컵스의 단편 〈원숭이 손〉에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손 같은 섬뜩한 존재다.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만을 원하고 승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면, 그런 승리를 얻는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대중 매체가 지나치게 빨리 발달하면 사회는 오히려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위너가 보기에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의 의견은 정치인, 기업가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계층으로 원활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즉 당대 미국 사회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아 잘 제어되지 않는 계였다.
사이버네틱스》가 남긴 것
하지만 위너가 품었던 야심만으로 지탱해 나가기에는 사이버네틱스라는 기획은 너무 거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이버네틱스》는 출간되자마자 학계와 사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사이버네틱스의 기획과 전망은 전후 서구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위너는 자신이 힘주어 말한 이상적 과학자 공동체의 이념과 정반대로, 1951년 사이버네틱스 연구 그룹과 갑자기 거리를 두었고 메이시 회의에도 불참하기 시작했다. 결국 위너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사이버네틱스 연구 그룹은 개별 연구자의 방식대로 저마다 다른 사이버네틱스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사이버네틱스를 주제로 하는 메이시 회의는 1953년을 끝으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위너가 《사이버네틱스》에서 전개한 구상은 각자 제어공학, 통신공학,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이버네틱스의 간학제적 성격도 동시에 등장한 일반 체계 이론이나 뒤따라 등장한 인지과학과 복잡계 과학에 빛이 바랬다. 새 이론을 주창한 사람들은 위너식 사이버네틱스 기획과 세계관을 낡은 것으로 치부했고, 혹독하게 비판하거나 아예 무시하곤 했다.
1960년대에는 마거릿 미드 등의 영향을 받아 메이시 회의 참가자 중 하나였던 하인츠 폰 푀르스터가 ‘사이버네틱스의 사이버네틱스’를 표방하는 ‘2차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기획을 내놓았다. 2차 사이버네틱스는 1950년대 사이버네틱스에서 간과되었던 계의 관찰자를 이론에 포함시켰고, 사이버네틱스적 분석 틀에서 이해와 윤리의 영역을 보다 넓혔다. 2차 사이버네틱스는 독자적 연구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지지자를 얻었다. 특히 칠레의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2차 사이버네틱스의 자장 안에서 발전시킨 자기 생산(autopoiesis) 개념은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을 끌었으며,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자신의 체계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폰 푀르스터의 2차 사이버네틱스를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 등 공산권 국가에서는 사이버네틱스가 그리는 자체 조직화 체계로서 사회와 국가의 비전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정치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사이버네틱스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1960년대 초부터 소련에서 사이버네틱스를 경제 계획에 도입하려고 시도했고, 전국적 네트워크 체계 오가스(ОГАС)가 기획되었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도 경제 관리를 위해 프로젝트 시베르신(Cybersyn)을 기획했다. 그러나 국가 단위에서 사이버네틱스를 경제에 적용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내외적 한계로 인해 모두 좌초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과학 연구 프로그램이나 정치적 기획과는 별개로, 문화계에서는 사이버네틱스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상을 발견하여 이를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았다. 로이 애스콧과 브라이언 이노 등 수많은 예술가는 사이버네틱스에 직접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미래를 직접 다루는 SF 장르에서는 필립 K. 딕 이래 수많은 작가들이 사이버네틱스적 미래상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놓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이보그(cyborg)’는 바로 ‘사이버네틱스적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축약이며,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장르적 규칙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된 사이버네틱스적 세계상이다.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인간과 기계,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을 허물어뜨리는 사이보그의 잠재력을 논했다. 1990년대 초 이래, 접두사 ‘사이버-’는 급기야 정보, 네트워크, 인공지능에 관련된 것들 속을 자유로이 부유하게 되었다.
《사이버네틱스》는 그러므로 20세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지적 운동의 진앙이자 그 여정의 첫걸음이며,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독자는 20세기의 지적 거인과 직접 대면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얻은 지식의 열매 중
사이버네틱스가 가장 큰 열매라고 생각한다.”
_그레고리 베이트슨(인류학자, 《마음의 생태학》의 저자)
“읻다 ‘연관’ 시리즈 첫 번째 책. 미국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가 1948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사이버네틱스》는 순환적 제어 메커니즘을 이용해 스스로 조직화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계를 분석한다.
위너는 이 책에서 제어공학, 통신공학, 신경생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전기·기계적 계, 생물의 신경계, 개체가 모여 이루어지는 사회처럼 광범위한 사례를 다룬다. 위너가 보기에 정보 교환으로 되먹임 고리가 형성되어 계의 제어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선박의 조타 장치와 인간의 시신경-대뇌 계는 다르지 않다. 전자계산기의 기억 장치와 인간 두뇌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생물이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참조해 환경에 맞게 사용하는 학습을 하는 것처럼, 기계도 경험에서 학습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위너가 그려내는 사이버네틱스는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는 현상들을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축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사이버네틱스》는 1948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정보와 제어 이론이 주는 참신함과 당혹감과 함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다. 노버트 위너는 곧바로 《인간의 인간적 사용》(1950)을 출간하여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1961년 제2판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이론을 정립, 소개하는 내용에서 나아가 10여 년 동안 발전해 온 아이디어에 대한 위너의 첨언을 담고 있다.
제1장 ‘뉴턴의 시간과 베르그손의 시간’에서 제3장 ‘시계열,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까지 위너는 ‘학습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현대의 자동 기계를 설명하기 위해 생리학의 메커니즘을 활용해야 하며, 이 메커니즘과 시관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뉴턴의 역학보다 기브스의 통계역학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고찰이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한 토대가 된다.
이 책의 중반부는 다음과 같은 위너의 변론과 함께 다양한 수식이 등장한다.
“우리는 수학적 기호법과 수학적 기법을 될수록 피했지만, 3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타협해야 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정확히 수학적 기호법이 적합한 언어가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피하려면 비전문가는 거의 이해하지 못할 장황한 문장을 써야만 할 것이며, 수학적 기호에 익숙한 독자들도 이러한 문구를 수학적 기호로 번역하는 능력을 사용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타협은 수학적 기호를 풍부하게 말로 설명하여 보충하는 것이다.” 난해한 수식을 통해 ‘정보의 되먹임(feedback)에 의한 제어’와 ‘항상성(homeostasis)’을 설명하면서 정보 이론과 생리학 이론을 결합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러한 작업은 시각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거치며 뉴런과 뇌의 활동으로 연결 짓는다. 주사(scanning) 과정을 통해 하나의 대상물을 변환할 수 있는 군(group)으로 추출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산출물이 우리의 감각과 인상을 통해 정보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위너는 실조(ataxia) 현상 등을 예로 제시하며 결손된 감각을 보완하는 관찰을 정신병리학과 장애의 문제로 확장해 사이버네틱스와 뇌의 관계에 대한 위너의 관점을 제시한다.
1948년 초판의 마지막 장인 제8장 ‘정보, 언어 및 사회’는 폰 노이만의 게임 이론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체스 두는 기계에 대한 위너의 예측을 담고 있으며, 다세포 생명체와 공동 사회를 시작으로 구성된 개체들 사이에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한다. 1961년 2판에서 추가된 제9장과 제10장은 초판의 보론의 성격을 갖는다. 생물의 특징으로 학습하는 능력과 스스로 증식하는 능력을 제시하면서, 이 두 능력을 기계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또한 전자공학의 발전과 자기상관함수라는 개념의 발견을 통해 뇌파를 미세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 책의 주요 발견 중 하나인 진동수 끌어당김에서 비롯한 비선형 상호작용이 만들 수 있는 자체 조직계에 대한 암시로 끝맺는다.
사이버네틱스, 20세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지적 운동의 탄생
노버트 위너는 무작위 잡음을 수학적으로 분석해 확률과정론과 전자공학이 발전하는 데 크게 공헌한 수학자다. 그러나 오늘날 위너는 MIT 교수로 재직한 제도권 학자보다는 방대한 학식을 자랑하며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고 거대한 규모로 독창적인 학제 간 연구의 청사진을 그려낸 기획자로, 또 자신이 제출한 기획에 내재한 위험을 고발한 사회사상가로 유명하다.
전쟁의 포연이 간신히 걷힌 1946년 3월, 뉴욕에서 신경생리학자, 수학자, 공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메이시 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생물학적 및 사회적 계의 되먹임(피드백) 메커니즘과 순환적 인과’였다. 회의 참가자들이 다룬 개별 문제는 신경망의 논리적 모사, 컴퓨터의 자율적 학습, 시신경과 대뇌의 시지각 메커니즘 등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행동의 결과를 반영해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자체 조절 과정을 이용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 회의의 근본적인 목표였다. 그 뒤에도 1953년까지 계속 열린 이 회의는 동물 행동과 인간 심리, 사회, 언어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서 자체 조절과 순환적 인과를 찾아내고, 이 현상들을 다루는 공전의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 갔다.
메이시 회의는 오늘날 ‘사이버네틱스’라고 부르는 거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형성한 요람이었다. 메이시 회의에 수학자로 참여한 위너는 1940년대 초부터 다양한 간학제적 연구를 수행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되먹임을 이용해 복잡한 계를 제어하는 일반 이론과 사례를 다룬 책 《사이버네틱스》를 집필해 1948년 발표했다.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기계, 생물, 인간, 사회를 아우르는 대담한 통찰
겨울에 자동차를 운전해 회사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매일 지나던 길을 통과하려고 보니 눈이 내려 빙판길이 되었는데, 이 길을 운전해 지나가야 한다. 빙판길 위에서 평소처럼 차를 몰면 크게 미끄러져 사고가 나기 쉽다. 안전하게 길을 지나기 위해 그는 전방을 주시하고 핸들을 섬세하게 조정하며 가속과 제동을 하면서 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바로바로 운전에 반영해 나간다. 가령 운전자는 더 가속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바로 진행하던 가속을 중단한다.
이것이 바로 목적(빙판길을 지나 출근)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행동의 결과를 다시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되먹임, 특히 사전 정보를 이용해 기존 행동의 강도를 줄이는 줄임 되먹임(음성 피드백)을 이용하는 사례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목적 있는 행동을 달성하기 위해 되먹임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행위 주체가 인간일 때만 되먹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행위 주체는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하는 각종 장기처럼 생체일 수도 있고, 먼 거리를 나아가기 위해 지형지물을 관찰하고 기상 정보를 받아들여 진로를 바꾸는 철새일 수도 있으며, 움직이는 비행기를 맞추기 위해 비행기의 위치와 속도를 관찰하고 예측 포격을 실시하는 대공 예측기일 수도, 생물 개체가 모이고 조직화되어 자체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
거꾸로,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정보를 수집하고 단기 목표를 수정하며 목적을 달성하도록 조직화된 계, 즉 위너가 194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로 ‘목적론적’ 계에는 항상 (줄임) 되먹임이라는 공통 제어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이때 되먹임이 이루어지려면 환경을 살피고 획득한 정보를 다시 행위 주체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여기서 위너는 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느냐가 아니라, 되먹임 자체가 이루는 구조에 방점을 찍는다. 따라서 위너가 보기에 인간에게 절단된 수족을 대신할 의수족이나 상실한 감각을 대신할 보형물을 만드는 문제는, 해당 기관이 가진 되먹임 구조를 공학적으로 해명하고 그것을 대신하는 기계를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 많은 기계가 생물계에 존재하는 제어 메커니즘을 모방하여 제작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간, 동물, 기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목적론적 계를 제어와 정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축으로 추상화해 그 제어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나아가 한 영역에서 해명된 제어 메커니즘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기획이 바로 위너가 그려내는 사이버네틱스다. 사이버네틱스는 따라서 처음부터 학제 간 연구를 표방했으며, 다양한 이론적 모형을 포괄하면서도 그 모형을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에 응용해 실제적 결과를 도출하려고 했다. 위너는 과학의 경계 영역에서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이 독립적으로 뭉쳐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공동으로 결과를 내놓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사이버네틱스 공동체를 꿈꾸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 및 후속 저작에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지 모르는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비평적 작업도 지속했다. 위너는 항상 기술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위너에게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발달한 기술이란 영국 작가 제이컵스의 단편 〈원숭이 손〉에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손 같은 섬뜩한 존재다.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기만을 원하고 승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면, 그런 승리를 얻는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대중 매체가 지나치게 빨리 발달하면 사회는 오히려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위너가 보기에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의 의견은 정치인, 기업가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계층으로 원활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즉 당대 미국 사회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아 잘 제어되지 않는 계였다.
사이버네틱스》가 남긴 것
하지만 위너가 품었던 야심만으로 지탱해 나가기에는 사이버네틱스라는 기획은 너무 거대했는지도 모른다. 《사이버네틱스》는 출간되자마자 학계와 사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사이버네틱스의 기획과 전망은 전후 서구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위너는 자신이 힘주어 말한 이상적 과학자 공동체의 이념과 정반대로, 1951년 사이버네틱스 연구 그룹과 갑자기 거리를 두었고 메이시 회의에도 불참하기 시작했다. 결국 위너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사이버네틱스 연구 그룹은 개별 연구자의 방식대로 저마다 다른 사이버네틱스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사이버네틱스를 주제로 하는 메이시 회의는 1953년을 끝으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위너가 《사이버네틱스》에서 전개한 구상은 각자 제어공학, 통신공학,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이버네틱스의 간학제적 성격도 동시에 등장한 일반 체계 이론이나 뒤따라 등장한 인지과학과 복잡계 과학에 빛이 바랬다. 새 이론을 주창한 사람들은 위너식 사이버네틱스 기획과 세계관을 낡은 것으로 치부했고, 혹독하게 비판하거나 아예 무시하곤 했다.
1960년대에는 마거릿 미드 등의 영향을 받아 메이시 회의 참가자 중 하나였던 하인츠 폰 푀르스터가 ‘사이버네틱스의 사이버네틱스’를 표방하는 ‘2차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기획을 내놓았다. 2차 사이버네틱스는 1950년대 사이버네틱스에서 간과되었던 계의 관찰자를 이론에 포함시켰고, 사이버네틱스적 분석 틀에서 이해와 윤리의 영역을 보다 넓혔다. 2차 사이버네틱스는 독자적 연구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지지자를 얻었다. 특히 칠레의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2차 사이버네틱스의 자장 안에서 발전시킨 자기 생산(autopoiesis) 개념은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을 끌었으며,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자신의 체계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폰 푀르스터의 2차 사이버네틱스를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 등 공산권 국가에서는 사이버네틱스가 그리는 자체 조직화 체계로서 사회와 국가의 비전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정치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사이버네틱스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1960년대 초부터 소련에서 사이버네틱스를 경제 계획에 도입하려고 시도했고, 전국적 네트워크 체계 오가스(ОГАС)가 기획되었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도 경제 관리를 위해 프로젝트 시베르신(Cybersyn)을 기획했다. 그러나 국가 단위에서 사이버네틱스를 경제에 적용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내외적 한계로 인해 모두 좌초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과학 연구 프로그램이나 정치적 기획과는 별개로, 문화계에서는 사이버네틱스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상을 발견하여 이를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았다. 로이 애스콧과 브라이언 이노 등 수많은 예술가는 사이버네틱스에 직접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미래를 직접 다루는 SF 장르에서는 필립 K. 딕 이래 수많은 작가들이 사이버네틱스적 미래상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내놓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이보그(cyborg)’는 바로 ‘사이버네틱스적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축약이며,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장르적 규칙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된 사이버네틱스적 세계상이다.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인간과 기계,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을 허물어뜨리는 사이보그의 잠재력을 논했다. 1990년대 초 이래, 접두사 ‘사이버-’는 급기야 정보, 네트워크, 인공지능에 관련된 것들 속을 자유로이 부유하게 되었다.
《사이버네틱스》는 그러므로 20세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지적 운동의 진앙이자 그 여정의 첫걸음이며,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독자는 20세기의 지적 거인과 직접 대면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